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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아 Oct 27. 2024

사랑의 의미


몇 달 전 두 번의 백신 접종을 하고 난 뒤, 저는 컨디션이 극도로 좋지 않았습니다.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었기에 본 직장인 서점 내에서도 가장 먼저 백신 휴가를 써야 했는데, 30대 후반에서 40대 이상인 학원 선생님들에 의하면

-그냥 팔에 멍든 것처럼만 아파요. 꾸준히 피곤한 정도?

라는 답을 들을 수 있었기에 나 또한 그럴 줄 알았습니다. 저는 가장 어렸으니까, 더더욱 괜찮을 거라며 방심했던 거지요.


그런데 40도에 달하는 고열은 물론이고 팔을 들어 머리도 묶지 못할 정도의 통증과 근육통, 몸살 기운이 제 일주일을 앗아가 버렸습니다. 그것도 두 번 다 말입니다. 최근 부스터 샷을 맞기 전까지도 가슴이 눌리는 듯한 통증은 지속됐고, 어느 순간부터 기침할 때 목에서 가래가 끓는 듯한 느낌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세 번째 백신 접종을 하고 나서도 아니나 다를까 38도의 고열과 근육통이 있었지요.


그보다 예상치 못한 복병은 허리 통증이었습니다. 일을 하다가 허리에 무리가 간 건지, 퇴근길에 집 앞에서 발을 헛디뎌 넘어진 탓인지 제대로 걸을 수 조차 없을 정도였거든요. 남동생에게 부탁해 급히 파스를 사다 붙이고, 꼼짝없이 누워만 있었습니다. 삼시세끼 전부 다 배달 음식을 시켜 먹으며 남자 친구가 알려준 스트레칭을 열심히 해주었고요. 물론 타이레놀은 아니지만 성분은 똑같다는 대체품과 함께 말입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하루 만에 열이 잡히고 근육통도 사그라들더군요. 두 번이나 그렇게 아프더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지요. 허리가 더 아파서 그랬으려나 하고요.


여러 장의 파스가 허리를 자극하고, 오래 붙어있던 파스가 붉고 네모난 자국으로 남을 때쯤 부작용은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주사 맞은 팔 부위 근처가 잔뜩 부어올라 가벼운 옷을 걸치기만 해도, 쓰라릴 듯이 아파왔거든요. 마치 멍이 든 것처럼 말이죠. 왼쪽 잇몸의 출혈과 통증, 두통도 생기더군요. 지독한 졸림과 피부 발진은 덤이었고요.


그래도 다행히 그 주의 스케줄 조정이 잘 되어 3일이라는 휴가를 받을 수가 있었는데, 4일째 되는 날 출근을 해 저의 상사이자 남자 친구인 그를 만났습니다. 남자 친구의 모닝콜이 아니었다면 저는 그날 지각을 했을 테지요.


그는 습관처럼 한 팔로 나를 안다가 주사 맞은 팔을 건드릴 때면 아파하는 나보다 더 아파하곤 했습니다. 두통과 설사, 그리고 온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아 중력의 기운을 몽땅 받고 있는 저를 보며 남자 친구는 애교 섞인 춤으로 저를 웃게 했고요. 참,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몸이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했나 봅니다. 부작용이 일상생활에서 꽤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 슬슬 걱정이 치밀어 오르기 시작하더군요.


-얼마 전에 백신 부작용으로 심장 마비 생겼던 사람이 나랑 동갑이었던가?

-부작용으로 고생하는 사람들 증상이 나랑 엇비슷했던 것 같은데….

-겨드랑이에 멍울은 또 언제 생긴 거야?

-치통, 두통은 오른쪽이었는데 갑자기 왼쪽이 다 아프다고?


온갖 걱정으로 내내 예민해있던 저를 보며 남자 친구가 최근에 읽은 기사를 보여달라고 하더군요. 나랑 증상이 같았던 한 학생이었습니다. 거의 절반은 될 대로 돼라 싶었던 내 입에서 한탄 섞인 말이 튀어나왔지요.

-죽기밖에 더 하겠어?

그런 저의 말에 남자 친구는 말했지요.

-만약에 그런 일이 생기잖아? 그럼 오빠는 다 필요 없고, 그냥 1인 시위 시작할 거야.

그의 그 말이 제게 큰 안도감을 주었습니다.


*


그는 오전 근무, 저는 마감 근무인 날이었습니다. 저를 두고 퇴근해야 하는 그는 언제나 저를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생각하는데, 그날은 유달리 그랬지요. 그도 그럴 것이 평소에도 감정 기복이 심한 편인데 오늘은 더더욱 예민하고, 우울한 감정이 떠나질 않았으니까요. 그래도 하루 종일 나를 위해 고생하고 애써준 남자 친구로 인해 많은 부정적인 기운을 덜 수 있었습니다. 퇴근 준비를 하는 그를 향해 제가 말했습니다.

-그래도 오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 고마워.


이후 돌아온 그의 대답은, 퇴근 시간을 앞둔 지금까지도 제 뇌리에 강하게 박혀 떠나질 않았습니다. 가벼운 두어 번의 뽀뽀와 함께 그는 집으로 가는 발길을 돌렸지요. 가서도 청소를 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밥을 차리는 모습을 영상으로 남겨 제게 보내주었고요.

-나는 그게 내 평생의 사명이라고 생각해.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가족도 하기 힘든 일, 물론 덕분에 여러 번 싸우기도 했던 내 못난 성격을, 아무도 맞춰줄 수 없다고 생각했던 저를그가 받아주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나의 든든한 매니저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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