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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아 Oct 27. 2024

마치 내 아무개 같아서


저희 엄마는 늘 지나가는 누군가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시곤 합니다.

-꼭 우리 아들 같아서.

-꼭 너네 어릴 때 보는 거 같아서.

-내 자식도 그런 때가 있었으니까.


온전치 못한 몸을 이끌고 대형마트 내에서 분식 장사를 할 때도 어린 나이의 학생들이 올 때면, 여느 손님들과 똑같이 대하는 나와는 달리 학생들이 무슨 돈이 있겠냐며 좀 더 친절하고 좀 더 챙겨주며 양보해 주었던 우리 어머니. 시간이 지나 그때 그런 어머니의 모습들은 전부 하나같이 안쓰럽고 마음이 쓰여서라는 걸 너무도 잘 알게 됐지요. 


그리고 이제는 저 역시 그런 생각을 하는 나이가 됐습니다. 길에서 또는 매장에서 부모님 또래의 어르신을 뵐 때면,

-나만한 자식이 있으시겠지.

-우리 부모님도 어디 가시면 젊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겠지

라는 생각에 더욱 상냥하고 느린 태도로 맞이하게 되는 듯합니다. 남의 부모에게 잘하면, 누군가도 우리 부모에게 잘해줄 거라는 믿음과 마음으로 말이지요.


유튜브를 돌려보다 마트 시식코너에서 일하는 어르신의 영상을 시청하였습니다. 내 어머니가 오래도록 해오셨던 일. 삼 남매를 키운다고, 안 해본 일 하나 없으셨던 분이 가장 많은 시간을 쓰셨던 일. 비록 꽤나 오랜 시간이 흘러 과거가 되었음에도 순간 제 기억은 몇 년 전으로 가있었습니다. 중학생 때의 난, 마트 시식코너에서 일하는 어머니가 부끄러워 부모님 직업란에

-주부

라는 명칭으로 업을 대신하곤 했지요. 대리운전을 하며 하루를 보내는 아버지의 직업은

-운전 관리직

이었고요.


그때와 달라진 바 없는, 아니 오히려 더욱 안 좋아졌을지도 모를 부모님의 경제적 상황과 삶이 지금은 오히려 떳떳하지만 그 당시엔 그게 왜 나라는 존재에게 창피한 것이 되었던 걸까요. 우리 부모님은, 그런 딸의 마음을 아시고도 같은 일을 계속해하셨어야만 했던 그 마음은 얼마나 슬프셨을까요. 떳떳하지 못했던 어릴 적 나 자신이 잠시 동안 미워집니다.


*


한 번은 매장에 어딘가 거동이 불편해 보이는 중년 남성이 온 적이 있습니다. 절뚝이는 한쪽 다리, 어눌한 말투와 느린 행동. 겨우 제가 서 있는 카운터로 와 느리게 지갑을 꺼내는 그의 옆으로 한 어린 소녀가 다가오더군요.


그 학생의 품엔 문제집 서너 권이 들려 있었습니다. 회원가입과 포인트 적립, 그리고 계좌이체를 받는 동안 그의 뒤로 계산을 기다리는 손님 줄이 계속해 늘어났지요. 어쩌면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부끄럽고, 창피할 수도 있는 그 순간이었지만 어린 소녀는 오히려 그의 옆에 꼭 달라붙어 계산을 도왔습니다. 소녀의 입에서 계속해 들려오는

-아빠

라는 단어가 그 어느 때보다 다정하게 느껴지던 순간입니다.


소녀는 그 순간, 무엇보다 중요한 것에 대해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이 계속해 말해줘야 한다는 걸요. 괜찮다고, 아무렇지도 않다고, 그러니 씩씩해도 된다고요. 소녀의 마음을 아는지 중년 남성의 얼굴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소녀는 제게 어른보다 더 높은 마음을 지닌 멋진 학생 손님으로 기억되고 있지요.


이제는 학원 사업을 하다 IMF를 맞아 쉽게 극복하지 못했던 내 아버지의, 지금은 오랜 시간 대리운전 일을 하며 하루 살이 인생을 살아오신 그 삶이 이제는 부끄럽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빠 대리운전 일 하는 거 다 알지?

-그런 거 뭐 좋은 거라고 얘기해.

하는 그의 말에
-뭐 어때? 

라고 당당히 대답할 수 있게 해 준, 긴 시간 오랫동안 스스로를 괴롭혔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나를 감싸는 주변 과거와 현재의 모든 걸 대수롭지 않도록 여길 수 있게 해 준 그 사람에게 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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