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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안녕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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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콩 Oct 19. 2023

꽃을 든 당신이 그립습니다.

먹어야 살지

서걱 거리는 현미밥을 숟가락에 떠 올리곤 입 앞에 멈춘 채 한숨을 쉬는 아빠에게 엄마가 걱정되어 한 소리였다. 

숟가락을 턱. 높더니 아빠는 버럭 화를 냈다. 

나라고 안 먹고 싶겠나! 

아빠의 짜증섞인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러다 아빠는 운동을 나가겠다며 신발을 신었다.     

서서는 신발을 신을 힘이 나지 않는지, 현관문 앞에 걸터앉은 채였다. 


엄마의 눈짓에 나는 호들갑을 떨며 갖은 애교로 아빠 옆에 찰떡처럼 붙어 함께 신발을 신었다. 엄마가 후다닥 옷을 챙겨 입고, 미지근한 물을 챙겨 들었다. 난생 엄마가 그렇게 외출 준비를 빠르게 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아직 얼굴에 화가 가라앉지 않은 아빠는 서둘러 걸음을 뗐다. 그날 운동 코스는 뒷산이었다. 


아빠는 암 진단을 받은 후 체력이 될 때마다 신선한 공기를 마신다고 등산을 했다. 길이 완만하여 체력 좋은 아빠에겐 펄펄 뛰어오르던 길이, 날이 갈수록 힘든 코스가 되더니 그날은 몇 번이고 가다 서길 반복했더랬지.     

언덕 위에 올라 엄마가 돗자릴 펴고 잠깐 쉬어가자고 했더니, 아빠는 저 한적한 길까지 혼자 더 걸어갔다. 그러더니, 잠시 후 들꽃을 한가득 꺾어 들고 와 엄마에게 내미셨다. 

아빠식의 화해였다. 성질 한번 제대로 낸 적 없었던 아빠였다. 그러니 그 속에 버럭 화를 내고 나서 맘이 몹시 불편했던 모양이다.


아빠에게 들꽃을 한 아름 받아 드는 엄마의 복잡 미묘한 얼굴을, 함께 갔던 친정 언니가 순간 포착해 사진으로 남겼다. 


꽃을 든 아빠는 살이 쏙 빠져 아빠 같지가 않았다. 낯선 얼굴이었다.     




매년 엄마의 생일이 되면 아빠는 잊지 않고 꽃을 좋아하는 엄마에게 꽃 화분을 선물하셨었다. ‘사랑하는 남편이’라고 적힌 리본을 잊지 않으셨더랬지. 

그런데, 그런 아빠는 엄마 생일을 며칠 앞두고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의 첫 생일날, 남편이 아빠를 대신해 엄마에게 꽃바구니를 선물했더랬다. 그걸 알고 내가 얼마나 펄쩍 뛰었던지.

아빠 생각 더 나게 괜한 짓을 했다고 남편을 나무랐지만 엄마는 꽃이 말라비틀어질 때까지 꽃바구니를 버리지 못했다. 아마도 그 마른 꽃을 보며 당신 생일날 꽃을 선물하던 남편을 하염없이 생각했겠지.     

영감재이, 이렇게 될 줄 알고 꽃다발을 미리 선물했나 보지.      

아빠가 선물해 준 들꽃은 그러니까, 매년 엄마의 생일마다 잊지 않고 꽃을 선물하던 로맨티시스트 아빠가 미리 선물하고 간, 엄마에게 건넨 마지막 선물이었던 셈이다. 

수 십 년 동안 생일에 남편에게 꽃을 받았던 엄마는, 이제 생일날이 얼마나 허전할까. 얼마나 사무칠까.

      

나 역시도 한동안 꽃집 앞을 지나가기만 해도, 주변에 널려있는 들꽃을 보기만 해도, 그날 핼쑥한 얼굴로 들꽃다발을 내밀던 아빠의 모습이 생각나 눈물 주루룩이었다.


오늘, 색색이 꽃화분으로 인테리어 되어 있던 커피숍을 다녀오며 아빠 생각이 훅! 하고 나서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숨 쉬기가 힘들었다.      


꽃보다 아름다웠던 나의 아버지여, 다시 당신이 꽃을 든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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