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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콩 Oct 30. 2022

마흔의 품격

마흔 넷_뇌졸중이 무서운 나이?

"오늘 아침엔 애 데리고 자전거 좀 타고 오지? "

"안돼, 요즘 계절에 운동하러 나갔다간 위험해"


 귀찮아서, 피곤해서가 아니라, 위험해서 안된다니. 이건 또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남편은 나와 동갑으로 올해 마흔 넷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아침 일찍 운동하러 가는 게 위험하단다. 무슨 말인고하니, 요즘 아침저녁으로 날씨가 제법 쌀쌀해지면서 뇌 질환이 생기는 노인들이 많아지는 때라는 거다.


 그렇다면 마흔이 노인이란 얘긴가?


 남편의 얘기인즉, 얼마 전 아침 조회를 하는데 체조를 하던 아주머니 한분이 좀 이상하더란다.

머리도 아프다 하고, 몸동작도 좀 어눌해 보이고.

현장 책임자격인 남편이 아주머니를 휴게실에서 쉬게 했다가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아서 아랫 직원에게 아주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가 검사를 받게 했단다.

 아니나 다를까, 아주머니는 뇌출혈이 의심되어 입원 즉시 검사를 받게 되었단다.  조금만 늦었더라도 큰일 날뻔한 일을 겪은 데다, 얼마 전엔 대학 동창 녀석 하나가 길을 걸어가다 갑자기 심장마비로 숨진 사건도 있었던 터다.

 게다가, 몇 달에 한번 남편과 나는 헌혈을 하러 가는데,

헌혈 전  하는 혈압검사에서  남편은  난생처음으로 고혈압 기준에 가까운 혈압이 체크됐다.


 결혼하고 14년 동안, 남편의 몸무게는 20kg 가까이 늘었다.  결혼전엔 빼빼 마른 몸에 살을 찌우려고 라면에 초콜릿을 잔뜩 먹고 잠들어도 살이 찌지 않았다는데, 마흔 즈음부터 배가 나오기 시작하더니 몇 년 새 임신 막달에 육박하는 몸이 되어 버렸다.

 절대 상상되지 않던, 중년의 배 나온 아저씨의 표본이 된 것으로도 모자라, 머리카락이 너무 빠져 뜨거운 음식을 먹으면 머리 밑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이 그대로 보일 정도가 되었고, 코 안까지 살이 차올랐는지 안 골던 코를 드르릉 골아대기 시작했다. 어떤 날에는 예민한 내가 건너 방에서 잠을 자다가 문득, 남편의 코 고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벌떡 일어나 달려간 적도 여러 번, 수면 무호흡을 걱정할 몸이 된 것이다.


 하나하나 나열하고 보니, 중년이 된 남편의 몸이 참, 서글프다. 그런 사건들 속에 그런 몸이 되고 보니, 이제 추운 계절 운동 나가는 게 덜컥 겁이 났던 모양이다.


 살이 찌고, 몸의 변화를 느끼는 건 남편 분이 아니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나 역시 처녀 적 55 사이즈도 크게 느껴지던 몸이다. 오죽했으면 시어머니가 이런 몸으로 아기를 낳을 수 있을까 걱정했다고 하더라. 믿거나 말거나~

 어쨌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나 조차도 몸무게가 15kg 이상 늘어났다.  셀룰라이트는 마치 영지버섯 모양으로 몸 곳곳에 자리 잡았고, 살이 찐 이후 극도의 피로감과 입병과 관절통에 시달리게 되었다. 총콜레스테롤이 너무 높아 헌혈을 할 때마다 재검사 권유를 받고 있다.


 그러고 보니 주변의 40대들이 모이면 어김없이 대화의 한 부분에 '병원 혹은 건강 정보'가 자리한다.


 얼마 전 6명이 모인 구역 모임에서 '류머티즘 관절염'이 주제로 이야기되었다. 누가 아침에 일어나면 손가락이 구부려지지 않는다고 했고, 어떤 이는 때마침 얼마 전 건강검진이었는데 피검사에서 류머티즘 소견이 있었다고 했다. 또 다른 이는 얼마 전 개원한 동네 소아과에 매주 수요일마다 류머티즘 전문의가 진료를 본다는 소식을 전했다.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시작된 건강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치과로 이어졌다.


 마흔여섯은 얼마 전 시린 이를 참다못해 치과를 방문했다고 한다. 얼마 전부터 치과 치료가 예상이 되어 급 치과전문 보험을 들었는데, 혜택을 다 볼 수 있는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고통에 몸부림치다 결국 치과를 가버려서 보험의 보장을 절반밖에 받지 못해 아쉬우며 치료 비용이 300만 원가량 예상이 된다고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마흔넷은, 남편이 임플란트를 가격 비교도 해 보지 않고 회사 근처 치과에서 해 버려 임플란트 한 개에 140만 원을 주고 했다고 한탄했다.  마흔다섯은 시청 옆 00 치과에서 임플란트를 반값에 할 수 있으며 후기들도 아주 좋다고, 뒤늦은 정보를 제공했다.


 치과 이야기는 아이들의 교정 이야기를 지나 잠자는 습관으로 이어졌고, 그것은 곧 남편들의 코골이로 이어졌다. 나는 남편이 결혼 직후 코를 골지 않았던 사람인데, 언젠가부터 코를 골기 시작했고 수면 무호흡이 가끔 걱정된다고 했다. 그러자 마흔여섯이 자기 남편도 수면 무호흡이라 새벽에 코 아래에 숨을 쉬고 있는지 확인하느라 손가락을 가져다 댄 적이 여러 번이라고 했다. 또 다른 마흔넷은 마흔이 넘어서 부터 남편의 수면 무호흡이 더 심해졌다고 했고, 마흔셋은 남편과 다른 방에서 자서 잘 몰랐는데 한번 확인해 봐야겠다고 걱정했다.


 누군가는 이 것들이 마흔이 넘으면 필수로 동반하는 것들이라 말했고, 누군가는 이게 무슨 마흔의 품격이냐고 콧웃음을 쳤다.


 마흔의 품격!

 생각해보니 나도 나이 마흔이 넘고 나서부터 몸이 여기저기 불편했다. 한번 살이 붙으면 빠질 생각을 하지 않았고, 갱년기 여성들처럼 갑자기 온몸이 확 달아오를 때가 많았다. 입 안이 자주 헐었으며 없던 비염이 생겨 콧물을 줄줄 흘리고, 눈이 가려워 비벼 댔다. 마흔둘에 대상포진이 왔고, 마흔넷에 총콜레스테롤이 위험 범위에 골인했다. 날마다 피곤함은 최고조에 달해 오죽했으면 내가 내 돈을 주고 영양제를 다 사 먹었을 지경이 되었다.


-TV 속에 나오는 40대들은 20대처럼 젊어 보이기만 하드만.

-그건 다 관리를 해서 그런 걸 거야. 우리도 돈만 투자하면 저들 못지않을걸?

-아니야. 그들도 알고 보면 고혈압, 당뇨, 수면 무호흡, 관절염, 내장지방 중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걸?



 20대에 상상했던 마흔은, 전혀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커리어우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지. 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자신의 전문분야의 커리어를 쌓고 열심히 일하는, 슈트가 어울리는 여성. (정장 치마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타고난 무-다리라. 헛). 돈 걱정은 하지 않으며 삶이 안정된, 완전한 지적인 어른의 모습.


 그러나, 현실의 마흔은 질병에 잠식당하기 시작하며,  건강을 걱정해야 하는 나이다. 고혈압이나 당뇨를 삶의 동반자로 함께 가지 않기 위해 죽어라 노력해야 하는 그런 나이.

 여전히 철은 들지 않았고, 여전히 통장 잔고는 비어 있으며, 무얼 먹고살지? 20대에 하던 고민을 여전히 하고 있다.


 이제 곧 마흔다섯.

 삶은 언제나 예상 밖의 일들로 우리를 당황시킨다. 마흔 중반에 또 어떤 자격을 추가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아프지 말자 마흔이여!

 고혈압, 당뇨, 뇌질환, 관절염 그런 것 따위 품격으로 채우지 말고,  탄력은 없어도 셀룰라이트는 없는 몸,  마른오징어를 씹어도 끄떡없는 건강한 치아와 피검사 앞에서 당당해질 수 있는 그런 마흔이 되기를!


아! 오늘 챙기지 않은 종합비타민제나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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