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돌콩 Oct 30. 2022

뚜벅이는 웁니다~

마흔 넷_나의 현명함은 왜 나이에 반비례하는가?

 매주 수요일은 6학년인 아들이 바쁜 날이다.

 2시 30분 학교 일과가 끝나면 택시를 타고 근처 학교로 이동해 3시부터 발명교실 수업을 듣고, 또 버스나 택시로 이동해 간단히 저녁을 해결한 다음 시립 소년소녀 합창단 연습을 하고  8시경 집으로 돌아온다. 아들이 수업을 듣고 합창단 연습을 할 동안, 자차가 없는 나는 커피숍에서 대기를 한다.


 며칠 전 수요일은 비가 억수로 내렸다.

 학교에서 다른 학교로 이동하는 택시 안에서 보니 비가 얼마나 오는지 와이퍼로 창을 연신 닦아 내도 내리는 비에 앞이 뿌옇게 잘 보이지가 않았다. 택시를 타러 가는 길 이미 1차로 옷이 다 젖어 찝찝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무사히 학교에 도착하여 아들을 들여보내고, 근처 무인카페로 들어섰는데,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져 있는 카페 안에 들어서자 젖은 옷 때문에 몸이 오돌오돌 떨렸다. 따뜻한 커피를 뽑아 들고 앉아 쏟아지는 비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차가 없는 뚜벅이는 동네 엄마들 중에서도 몇 안된다. 우리 동네가 유독 섬과 같이 막힌 동네라서 그런지, 동네 엄마들 모두 작은 경차를 하나씩 끌고 다닌다. 그만큼 동네 대중교통이 좋지 않은데, 이렇게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 무인 카페에 앉아 가만 창밖을 바라보고 있자니 내 처지가 좀 서글프게 느껴졌다.


 합창단 연습실로 어떻게 이동할까 잠깐 생각해 보았다.

 버스로 이동을 하면 두세 번 갈아타야 하는 데다 시간이 오래 걸려 저녁을 먹여 보낼 수 없다. 택시를 타면 택시비가 만 오천 원이나 나오지만 일찍 도착해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 버스 덕후인 아들은 매번 버스를 타자고 졸랐지만, 오늘 같이 비가 오는 날엔 어쩔 수 없다.  마음속으로 택시를 타기로 결정을 하고 여유롭게 차를 마셨다. 온몸이 찝찝한 것만 빼면 무인 카페에서 비 내리는 창밖을 보며 마시는 한 잔의 커피가 나쁘지 않았다.


 한 시간 반 후 아들이 발명교실 수업을 마치고 나왔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고, 택시를 호출했지만 20분 거리에서도 잡히지 않았다. 연거푸 택시 호출에 실패하자 어쩔 수 없이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비는 샤워기를 틀어놓은 듯 온몸을 적셨다. 정류장으로 이동하는 몇 분 동안 아들도, 나도 온몸이 2차로 홀딱 젖었다. 우비를 입고 있었는데도 소용이 없었다.

 정류장에 도착해 버스 도착시간을 알아보고 있는 때, 아들과 같은 학년의 합창단 엄마에게 메시지가 왔다.

 '이 날씨에 도저히 운전할 수 없다. 비가 많이 오니 우리 아이는 오늘 연습에 참가하지 않을 것이다'는 내용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연습은 참가해야지. 책임감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해서도 우린 포기하지 않고 택시를 호출했다. 버스 정류장으로도 비가 세차게 뿌려졌다. 비를 더 피할 곳도 없어 우비를 입고 우산을 쓰고 있어도 무방비로 비를 맞게 되었다. 지금 와 생각하면 그 정도로 옷이 젖고 비가 내리는 상황에 한번쯤 연습을 빠지는 것도 생각해 보아야 했다. 하지만 마흔넷의 나는 개근상이 자랑스럽던 세대가 아닌가.

 택시 호출을 실패하고 우선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을 가서 갈아타기로 했다. 다행히 갈아타는 버스가 금세 도착했지만, 홀딱 젖은 옷을 입고 버스정류장앞에 서 있노라니 왠지 서러워서 눈물이 핑 돌았다. 택시는 끝까지 잡히지 않아 버스를 갈아타게 되었는데, 그때라도 집으로 돌아갔어야 했다.


 잠깐 졸다 눈을 떠 보니 버스가 그 자리 그대로인 것 같다. 주변을 살펴보니 차가 앞 뒤로 꽉 막혀 있다. 여느 때라면 벌써 도착하고 남을 시각이었지만, 차는 한 정거장을 이동하는데도 수 십 분이 걸렸다.


 아이 합창단 단무장 님께 차가 너무너무 막혀 꼼짝을 하지 않아 지각이 불가피한 상황이며 언제 도착할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고 문자를 보내고 고갤 드는데, 창 밖으로 황토색 물이 출렁거렸다.


 '이게 뭐지?'


 하는 찰나 뒷문이 열리는 발판 아래로 흙물이 들어와 출렁거리고, 버스 앞 창으로 물에 둥둥 밀려 뒤로 사라지는 경차 한 대가 보였다.

침수된 도로를 지나며 버스 안으로 물이 차오르고 있다.

 도로가 침수되었고, 그 사이를 버스가 힘겹게 지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공포가 밀려 올 새도 없이, 버스는 다행히 침수된 곳을 힘겹게 빠져나왔다. 순간 119 버튼을 누르고 전화를 걸까 말까 망설였다. 조금 전 둥둥 뒤로 밀려가던 경차를 구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기 때문이다.


 "엄마 저기, 경차 나왔어!"


 아들의 이야기에 고갤 들어보니 버스 앞 창문 너머로 문제의 그 경차가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앞서 나가고 있다. 다행이다..


 그렇게 침수의 고비를 넘기고 우리는 버스로 40분 정도면 도착하는 거리를 2시간 반 정도를 달려 힘겹게 도착했다.  저녁도 간식도 먹지 못한채 지각한 아들을 서둘러 연습실로 보내고, 또 커피숍으로 이동했다.

 커피숍에 들어서자 내가 걷는 걸음마다 물자국이 남아 민망함이 몰려왔다. 누군가의 발자국이 더해졌더라면 덜 민망했을텐데... 하필이면 커피숍 바닥엔 물기하나 없이 말라 있었다.

 따뜻한 커피를 주문하고, 우비를 벗고, 젖은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합창단 관계자로부터 알림이 왔다.

비가 너무 내려서 못 오는 사람이 발생하고, 해서 오늘은 결석을 해도 결석으로 체크되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이 비에 운전할 수 없어.' 아이를 하루 결석시키겠다던 그 엄마는 자신의 결정에 뿌듯함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제야 나는 오늘 하루 나의 결정들을 떠 올려 보았다.


 그렇게 억수로 비가 내리는데 발명교실을 택시 타고 이동했던 것부터 후회가 되었다.  아니 거기까진 갈 수 있다 하더라도, 택시가 잡히지 않았을 때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방법을 생각했어야 했다.


 어쩜 나는 나이가 들수록 현명해지지 않고, 더 모지리가 되는 기분일까. 젊었을 때 보다, 많은 변수를 알게 되었고, 생각이 많아졌고, 그래서 결정장애가 있던 나의 결정장애는 더욱 심각해졌다. 나이가 많아지고, 노하우가 쌓이고, 삶의 지식이 쌓이면 더 현명해져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기어이 빗속을 뚫고 무식하게 합창단 연습에 참여시킨 내 결정을 떠올려 보니 참... 어리석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들도 홀딱 젖은 옷을 입고, 배고픔을 참고 연습을 하러 가서 얼마나 고생일까. 노래하는 그 시간이 과연 즐거울까 생각하니 엄마의 잘못된 결정으로 고생하고 있을 아들에게 미안해졌다.


 나의 자책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으니.집으로 돌아가는 길 마저도 고난의 연속이었다. 마침 회식이 잡힌 남편이 데리러 오지 못하는 바람에 또 택시나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는데, 어쩜 마지막까지도 택시가 호출되지 않는 것이었다. 버스는 눈앞에서 놓쳐 25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쯤 되니 그저 서러워 눈물이 핑 도는 것이었다. 온몸은 찝찝하고 빗물에 젖은 가방은 무겁고, 배는 고프고, 언제까지 이렇게 뚜벅이 생활을 해야 하는 걸까 생각하니 서러웠다. 나는 왜 이 빗속에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끝까지 아들의 스케줄을 감행시켰나 생각하니 나의 현명하지 못함에 후회가 되고 내 선택이 아쉬웠다.


 돌아가는 버스 안. 시청 인별 그램에 우리가 온 길이 곧 침수로 통제되었음을 알리는 사진이 떴더라. 무식하게 그 길을 뚫고 지나간 자. 버스에 차오르는 흙탕물을 보면서도 미련하게 출석을 하려 한 자. 개근상이 최고인 줄 아는 옛날 사람이여!  _하긴 뭐, 그 빗속에서 그 물을 보면서 돌아갈 수도 없었으리라. 자차가 있었던들 그 빗속을 운전했을 리 만무하고. 합창단의 그 엄마처럼 애초부터 집 밖으로 나갈 생각을 안 했어야 옳다.

언제쯤 나는 현명 할 수 있을까? 나이를 더 먹는다고 해서 현명 해지긴 할까? 내 나이 마흔 넷이 우습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흔의 품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