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나는 4번의 헌혈을 했다. 아니, 작년 12월 마지막 날 헌혈을 시작했으니, 올해는 정확히 3번 했다고 할 수 있겠다. 부끄럽게도 그 이전에는 헌혈 한 기억이 없다.
변명을 하자면, 대학 때는 알바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20대 때에는 일이 바빠 잠 못 자며 일하느라, 30대에는 아픈 아이를 낳고 정신을 못 차려서 헌혈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러다 작년 11월. 갑작스럽게 췌장암 진단을 받은 아버지가 병원에서 고생하시다 돌아가시고 난 후,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고 할까? 아등바등 살기도, 대충대충 살기도 싫고, 그저 주어진 내 삶을 성실히, 욕심내지 않고 살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선한 일을 하자고.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기부나 금전적으로 돕는 건 어려울 것 같아서 헌혈 생각이 났다. 스무 살 때야 44의 몸매를 가졌던 나로서는 빈혈을 달고 살았지만, 결혼하고 20킬로 가까이 살이 불어난 내가 빈혈 걱정을 할 일도 없고 말이다. 게다가 나는 반드시 헌혈을 해야 하는 자였다.
13년 전, 아이를 출산할 당시 '태반조기박리'와 함께 '자궁무력'이란 응급상황을 맞아야 했다. 출혈이 멈추지 않았던 것인데, 저혈량성 쇼크라고 들어봤나? 까딱했다간 하늘나라 갈 뻔했던 내가 살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남의 피' 덕분이었다. 10년도 더 된 기억이라 가물 거리지만, 아마도 20 봉지 이상 수혈을 받았던 것 같다. 그렇게 몸속에 고마운 분들의 피를 채우며 응급 수술을 받고 나는 겨우 살 수 있었다. 수술 직후엔 회복에 힘쓰느라 헌혈로 감사함을 되갚아야겠단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고, 또 아픈 아이를 내가 의사, 간호사가 되어 직접 치료하고 케어하다 보니 경황이 없었다. 이제 아이도 많이 자랐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때 내가 받았던 고마움을 내 피로 갚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12월의 마지막 날 왠지 마무리를 잘하고 싶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 해의 슬픔을, 아픈 사람들을 위한 일을 함으로써 이겨 내 보자 생각했다. 남편과 손 꼭 잡고 헌혈의 집으로 들어섰다. 남편도 오랜만에 하는 헌혈이었다. 그는 이미 장기 기증까지도 약속한 몸이시다. 남에게 도움 되는 일이라면 돈 드는 일 아니니까 하자는 주의. 그런 사람도 역시나 아픈 아이를 키우며 몸도 마음도 여유가 없었는지 아이가 자라는 동안 헌혈을 하지 못했다.
봉사를 하고 싶은데, 시간은 없고, 시간이 없음 돈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돈도 없고, 가진 게 없을 때 할 수 있는 최적의 봉사가 바로 헌혈이지.
그렇다. 남편은 봉사를 하고 싶은데 가진 게 몸뚱이뿐이라 헌혈을 하는 것이고, 나는 내가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 헌혈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작년 12월 31일 헌혈을 시작했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도 있지만, 난 헌혈한 날 만큼은 단톡방에 자랑을 했다. 헌혈했다는 얘길 듣고 누구라도 '나도 해 볼까?' 하는 마음을 들게 만드는 것이 그 목적이라 하겠다.
어떤 사람은 '처녀 적에 헌혈을 하려고 했는데 빈혈이 심해서 못했어'라고 했다. 응? 지금 그 몸에, 아직도 빈혈이?
어떤 사람은 '바늘이 무서워서 감기 주사도 안 맞아'라고 했다. 응? 바늘 공포증 아니면 성인인데 그 정도쯤이야~ 참아보면 되지 않을까?
또 어떤 사람은 '피 같은 피를! ' 내어 줄 수 없다고 했다. 응? 우리는 소중한 것을 일컬을 때 '피 같은 무엇'이라는 말을 쓰곤 하지 않나. 사람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피이다. 그렇게 귀한 것을 나누는 마음이야 말로 정말 선한 것이 아닐까?
어쨌거나 그 귀한 것을 내어 주어 필요한 사람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뿌듯하고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이 뿌듯한 마음을 다른 사람들도 느꼈으면 하는 마음에 헌혈자랑을 하는 것이다.
물론, 헌혈 후 받는 상품권의 매력도 무시할 수 없다. 요즘은 스타벅스 상품권, 문화 상품권, 영화 관람권 등 선물의 선택폭도 넓다. 피 같은, 피를 내어주고받는 상품인데, 너무 소소한 것 아니냐 할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왠지 이것이 덤으로 받는 선물 같아 기분이 좋다. 또 가끔은 콜레스테롤이나 혈액 기본 검사를 해 줄 때도 있어서 자주 건강검진을 받지 않는 사람에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알고 보니 나, 콜레스테롤 많은 여자더라.
한 번은 헌혈을 하면서 간호사분이 가져다준 상품목록을 훑어보고 있었는데, 옆에서 헌혈 중이던 남자분이 상품을 거절하는 걸 보았다. 순간 무슨 상품을 받을까 고민하던 나 자신이 참 부끄럽더라. 그는 헌혈을 하고 나서 마치 자신의 순수한 봉사정신을 훼손하지 말라는 듯, 헌혈 증서마저 기부하고 떠났다. 멋졌다. 헌혈 후 받는 상품권도, 헌혈 증서도 모두 거절한 그를 보며 나의 선함은 아직도 갈길이 멀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지막 헌혈 때는 아들도 데리고 갔다. 아직 미성년자라 헌혈을 하진 못하지만, 조기교육이라고나 할까? 헌혈을 할 수 있는 몸이라 얼마나 감사한지, 헌혈로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려주고 싶었다. 네가 태어날 때 엄마도 죽을 뻔했지만, 많은 이들의 헌혈 덕분에 이렇게 살 수 있었던 거라고. 생명을 살리는 헌혈이라고. 뻔한 얘기지만, 뻔하지 않은 실천의 현장에서 말이다.
어느 날 단골 떡볶이 집에서 떡볶이를 먹다가 단무지가 떨어져 가지러 갔다. 단무지통이 놓인 곳이 바로 주방 앞이었는데, 주인아주머니는 주방에 성경책을 펼쳐놓고 틈틈이 오가며 읽고 계셨다. 일독을 하셨냐는 내 질문에 아주머니가 말씀하셨다.
일독이 뭐야~ 난 내 나이만큼 성경을 읽는 게 목표라고~
그 바쁜 와중에도 수십 번 성경책을 읽어낸 아주머니를 보며 엄지척했다.
그날 떡볶이를 질겅질겅 씹으며 생각했다. 그럼 나는 내 나이만큼 헌혈 횟수를 채워보면 어떨까? 하고. 더 나이를 먹기 전에, 40대에 힘써 보기로. 가진 건 없어도. 몸은 아직 쓸만하니까. 나의 피 같은 피가, 생명을 살리는 데 귀하게 쓰이기를. 내가 그리 살아났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