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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Nov 13. 2023

재능의 카타르시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감동하는 당신이기를

카타르시스 : 

정신 분석에서, 마음속에 억압된 감정의 응어리를 언어나 행동을 통하여 외부에 표출함으로써 

정신의 안정을 찾는 일. 심리 요법에 많이 이용한다. (네이버 국어사전)


재능을 발견하고 그 일을 시작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결실을 맺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거나 일이 흐지부지되고 만다. 왜 그럴까? 분명히 좋아서 시작한 일이고, 시작할 때는 열정이 넘쳤는데 말이다. 이런 상태에 놓이면 대부분 자신의 의지나 재능 부족을 탓하며 자책에 빠진다. 나도 그랬다. 


악기 연습을 예로 들어 보자. 어떤 악기를 배우고 싶은 욕구가 강했던 사람이 악기를 배우기 시작하면 대개 어느 수준 이상으로 잘 연주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정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 매진, 정진하게 된다. 문제는 그 수준에 도달하는 게 결코 쉽지 않고, 시간이 꽤 걸린다는 사실이다.(심지어 안될 수도 있다) 이런 단계에서 의지의 한국인(한다면 한다) 스타일의 A는 성공하고, 인내심이 부족하고 변덕이 심한 스타일의 B는 실패하는 걸까?


결! 코! 그렇지 않다. 태생적으로 의지와 감정이 박약하고 연약한 인간은 오로지 이상적인 목표만을 향해 soldier나 로봇처럼 나아갈 수 없다. 그렇게 한다고 하더라도 그건 마치 힘이 들어간 어깨와 손가락으로 매일 세 시간씩 억지로 피아노나 기타를 연습하는 것과 같다. 억지스럽기 때문에 메마른 살이 터지듯 결국에는 탈이 난다. 설령 이상적인 목표가 매우 이타적이라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이기적인 인간이 오로지 이타심만으로 어떤 일을 지속하다는 건 자기 기만과 가식과 피로를 누적하는 일일뿐이다.


이런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 목표까지 가는 여정 동안 순간순간 우리가 누릴 수 있고, 누려야 하는 카타르시스들이다. 때로는 작고, 때로는 벅찬 순간들 말이다. 마약이나 약물로 얻을 수 있는 황홀감이 매우 자기 파괴적이라고 한다면 그 반대편에 있는 이 카타르시스는 자기긍정적이고, 자기성장적이다. 이 카타르시스는 스스로 B 스타일이라고 여기는 수많은 우리들도 재능을 위한 활동 - 재능을 가꾸고 사랑하는 일 - 을 지속할 수 있게 한다. 


봉사를 꾸준히 하시는 분들을 매스컴에서 인터뷰할 때, "어떻게 이런 봉사를 오랫동안 하실 수 있으세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하고 인터뷰어(interviewer)가 질문을 던진다. 자원봉사자들이 한결같이 하는 대답은 "봉사를 할 때마다 저도 큰 기쁨을 느껴요."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저는 좋아서 하는데도 그런 카타르시스를 별로 못 느껴요. 악기 연습이 어렵고 점점 재미가 없어져요. 아마 제 재능이 부족해서 그런가 봐요."라고 대답한다. 재능이 갓 새싹일 때는 이런 카타르시스의 크기가 매우 작거나 스스로가 작다고(하찮게) 여긴다. 즉 카타르시스는 존재하는데 우리 마음이 잡다한 것들로 어질러져 있거나 욕심으로 가득 채워져 있어서 그 느낌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재능을 처음 키울 때는 무작정 스파르타식으로 행동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재능과 내가 교감할 수 있도록 우선 마음을 비워야 한다. 내가 순수해지는 만큼 느껴지고 보인다. 그건 마치 내 마음이 짜증이나 원망으로 가득 차 있으면 아무리 아름다운 자연을 봐도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다. 피아노를, 춤을, 달리기를 배우며 어제보다 나아지고 예뻐진 자신의 재능을 전혀 발견하지 못한다.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지겨운 오늘. 사는 게 다 뻔하지' 이런 마음으로는 내게 주어진 짧고 소중한 시간(삶)을 제대로 영위하고 누릴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재능도 그렇다. '어제나 오늘이나, 6개월 전이나 유튜브에 잘 치는 저 사람에 비하면 내가 달라진 게 뭐람. 뻔하지 뻔해. 결국 승자 독식 사회, 자본주의 아니겠어.' 이런 생각.


반면 재능을 키우는 과정에서 순간순간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사람은 의지나 인내의 힘이 아닌 이 감흥의 힘으로 그 일을 꾸준히 해 나간다. 물론 감흥이 없는 날도 있고 하기 싫은 날도 있을 것이다. 날마다 충만하다는 건 현실적으로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 맛을 여러 번 느껴봤기 때문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내가 좋고, 이것이 나를 빛내주고, 결국 타인까지 이롭게 한다면 내가 이 일을 못할, 안 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피아노 연습을 예로 들어보겠다. 연습을 하고 피아노를 알아갈수록 단순히 '잘 친다, 못 친다'의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는 수많은 순간들이 있다. 미세하게 매번 다른 터치감, 정박에서 조금 당기거나 늦춤에 따라 묘하게 달라지는 리듬감, 서스테인 페달 사용에 따른 차이... 똑같이 이루마의 <Kiss The Rain>을 연습하더라도 수많은 사람의 수많은 감정과 버전이 존재한다. 또 완곡을 하지 않더라도 그 구간 자체에서 느껴지는 화성 진행의 느낌, 리듬의 느낌, 멜로디의 희로애락이 있다.


피아노를 계속 연습할수록 나는 더 섬세하게 음악을 느끼게 되고, 이 느낌은 결국 청자에게도 전달된다. 음악을 모르는 청자도 이런 차이는 알아차린다. 그러니 우리는 피아노를 잘 치려고 하기 전에 '잘 친다'의 정의를 잘 내려봐야 한다. 재정의해야 한다. 자본주의가 심어준 강박적이고 천편일률적인 '잘 친다'에서 우선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지금껏 이런 마음의 여유 없이 살아왔다. 그저 타인으로부터의 표면적 인정에 목말라하며 그것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았다. 무언가를 잘 하려는 것의 최종 도달점(목표점)이 이 '타인으로부터의 표면적 인정' 아니었던가. 즐거움을 위해서 시작했건만 즐거움을 잊어버리고 주객이 전도된 채 끙끙거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우선 마음을 비워보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는 윤동주 시인처럼 한 번의 피아노 터치, 달리기의 한 보폭, 단 한 줄의 문장에도 감동할 수 있도록. 지금 당신이 하는 일이 잘 안된다고 느낀다면, 당신의 재능이 낑낑거리고 있다고 느낀다면 조용한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미세한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라. 그러면 당신의 재능과 그 재능을 향한 사랑, 재능의 카타르시스가 느껴질 것이다. 그러면 내일  또다시 시작하면 된다. 재능과의 알콩달콩하고 행복한 여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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