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술에 허덕여 맨 정신으로 밤을 맞이한 게 기억이 나질 않는다. 유독 쓰라린 이번 겨울, 내가 알코홀릭이라도 된 것일까. 연말 바쁜 약속으로 취한 것이 아니다. 혼자 집에서 남은 와인을 따며 그렇게 수많은 저녁을 보낸다. 사실 요새 쓰는 브런치 글 또한 맨 정신으로 쓴 글이 없다. 그렇기에 다음날 아침 급하게 수정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그저께 대학원 수업을 마치고 후회할지도 모를 메일 한 통을 교수님께 보냈다.
내용 그대로였다. 겨울에 취했는지, 교수님이 해주시는 수업이 너무 감사하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곧 정년퇴임 하시는 교수님이기에 지금 이 순간 감사의 말씀을 전해야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왔다. 물론 평소에도 존경하는 교수님이기도 하지만, 대학교 시절에도 특정 교수님에게 이렇게 개인적인 연락을 취해본 적이 없던 나는 다소 불필요할 수 있는 메일을 송부드렸다.
하지만 교수님은 친절하게 답변을 해주셨고, 그중 내 눈시울을 적시는 말씀을 해주셨다.
가끔 아날로그식 이런 메일이 삶을 풍요롭게 하거든요.
나는 평생을 아날로그로 살아왔다. 현재 IT업계에 종사하고 <트렌드코리아> 책에 참여하는 등 그 누구보다 시대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지만 사실 아날로그를 추구한다. 심지어 내가 작곡하는 곡들 또한 그저 음성녹음이라는 오래된 습작으로 남아있는 것처럼. 나는 사람들에게 가끔 술과 계절에 취해 연락을 한다. 평소에는 한 번도 연락하지 않는 나라는 인간의 연락을 갑작스럽더라도 그저 아무 일 아니라는 듯이 잘 받아주는 것에 세상이 아직 온기가 남아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이렇게 나의 메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신 교수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올리며 시 한 편을 지었다.
In my youth, by this lake, I'd wander,
Lost in contemplation, a soul meander.
A decade hence, I returned once more,
The me of yore, vanished, gone ashore.
어렸을 적 이 호수를 방황했다.
사색에 잠긴 채로, 영혼을 헤매었어.
십 년이 지난 후, 다시 돌아왔을 때,
옛날의 나는 사라졌고, 사라져 있었네.
Photo by B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