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민재 Mar 28. 2020

아내를 아내라 부르지 못하고

언어에 드러나는 생각의 습관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어느 회식 자리였던 거 같다. 말수가 적은 데다 막내였던 지라, 내가 말할 기회는 없었다. 묵묵히 주는 잔과 안주를 챙겨 먹고 있었다.


어쩌다 말할 기회가 왔다. 누가 나에게 질문을 한 것이다. 나는 씹던 안주를 얼른 삼키고 입을 열었다.


  "저의 아내가 어제요…."


그러자 상대방이 물었다.


  "누구라고?"


  "아, 제 아내요."


  "누구?"


  "집사람이요, 집사람."


결국 집사람이라는 말을 쓰고야 말았다. 특정인을 지칭하는 말 중에 가장 마음에 안 드는 말이 이거다. 집사람. 한 개인의 존재를 작은 공간 또는 역할에 한정하는 언어 같아서, 여자는 으레 그래야 한다고 규정하는 것 같아서 웬만하면 쓰지 않는다.




결혼 후 호칭을 고민했다. 집에서는 '여보'라고 부르면 된다. ( 말은 '여기 보오'라는 준말이라는 설이 있다.) 그런데 집을 벗어나, 다른 사람 앞에서 나는 '여보'를 어떻게 불러야 할까. '집사람'이나 '안사람'은 위에서 밝힌 이유로 싫었다. '와이프'는 영어라 싫었다. '부인'은 뭔가 신혼에 맞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찾는 게 '아내'라는 말이다. 내 나이와 상황에 부합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순 우리말 같았다. 그 이후로 타인 앞에서 그녀를 '아내'라고 지칭했다.


아. 그 회식 자리에서 상대방이 한 마디 더 했는데, 이런 내용이었다.


  "아 진작 그렇게 말해야지. 다음부터는 편하게 집사람, 아니면 와이프라고 해."


내가 왜 그런 말을 쓰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그는 타인의 언어를 이해해주는 이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그냥 네, 하고 말았다.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인격과 생각이 드러난다. 아내, 집사람, 여편네는 같은 언어가 아니다. 모두 다른 느낌을 준다. 언어는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말해준다. 언어는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일종의 안경 역할을 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큰일이다. 이제야 어원을 찾아보니, 아내라는 말도 집안 살림을 맡아서 하는 식구라는 뜻이란다! 그렇다면 집사람과 큰 차이가 없는 것 아닌가. 아, 이거 이제라도 바꿔야 하나.


오늘 저녁을 먹으며 여보에게 좀 물어봐야겠다. 타인에게 어떤 말로 불리고 싶은지, 나에게 당신이 어떤 존재였으면 하는지 말이다.




|커버 사진|

Pixabay

juliakaufmann




https://brunch.co.kr/@banatto/92


매거진의 이전글 달리지 않으면 뒤쳐지는 느낌이 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