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하면 이틀을 하고,
이틀을 하면 한주를 하고,
한주를 하면 한달을 하고,
한달을 하면 두세 달은 쉽게 한다.
알 수 없는 수증기가 가득한 공장. 그 공장의 작업반장이 내게 건넨 말이었다. 아직 젖살이 다 빠지지 않은 얼굴로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날은 출근 첫날이었다.
20살 겨울. 인천의 한 공업단지에서 일을 했었다. 다양한 삶을 경험하고 돈도 벌고 싶었다. 나는 대학 1학년의 겨울방학을 반납하며, 스스로 내국인 단기 노동자가 되었다.
하면 되지. 못할 게 뭐 있어. 무식하고 용감한 패기로 공장에 출근한 첫날, 나는 후회했다. 작업실의 온갖 약품 냄새에 숨이 턱 막혔다. 한쪽에서는 황산이 섞인 주황빛 용액이 출렁이고 있었다.
못 한다고 말할까?
하지만 출근 첫날 도망가고 싶지 않았다. 여기서 도망가면 다른 일도 포기할 것 같았다. 사실은 못 한다고 말할 용기가 없었다. 그리고 작업반장 말대로라면 하루만, 딱 하루만 버티면 될 일이었다. 하루의 버티기가 장기근속을 보장한다니, 한번 해보기로 했다.
핸드폰 제조에 필요한 금속 부품을 도금하는 작업이었다. 금속 꼬챙이에 달린 금속 부품들이 떨어지지 않게 이 용액 저 용액에 담갔다가 전기분해 회로에 올렸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회로에서 분리하여 물에 헹구는, 아주 단순한 작업이었다.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일도, 엄청난 근력을 필요로 하는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평소에 몸 쓰는 일을 하지 않던 내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힘들었지만 두 달만 버텨볼 요량이었다.
하루를 버텼다. 몸이 쑤셨다. 둘째 날도 버텼다. 이상한 잠꼬대를 했다. 그리고 결국… 두 달을 버텼다. 두 달의 시간 동안 작업반장의 조언을 내게 큰 힘이 되었다. 하루가 이틀로, 이틀이 일주일로, 일주일이 한달로 이어지는 삶의 관성을 경험한 숨 막히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오늘 설거지를 하다 문득 이 말이 떠올랐다. 언제부턴가 설거지가 자동으로 된다. 식기세척기를 샀다는 말이 아니다. 밥 먹고 바로 설거지를 하는 습관이 들어 버린 것이다.
밥 먹고 설거지하고 다시 식탁에 앉아 차를 마신다. 차의 마지막 한 모금을 마시고 개수대를 본다. 내가 설거지를 했나, 하고 개수대를 보면 밥그릇과 국그릇이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부지런한 민재가 밥을 먹자마자 설거지를 하는 바람에, 여유로운 민재는 기분 좋게 저녁 자리를 마무리한다.
오늘 느닷없이 그 작업반장의 '하루 이론'을 떠올리며 어떤 일의 자동화, 일상화, 생활화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꾸준함의 의미에 대해 생각한다. 꾸준하다는 것은 무엇 하나에 시간과 정성을 쏟는 것이다. 여기엔 반드시 기회비용이 발생한다. 꾸준하려면 다른 무엇을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루 이론'은 무언가를 포기하는 연습이자, 꾸준함을 익히고자 하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이론이다.
내게 설거지가 습관이 된 것처럼 글쓰기도 습관으로 만들어 가는 중이다. 글쓰기가 습관이 되면 또 다른 좋은 습관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애쓸 것이다. 그렇게 내 삶에 필요한 습관을 하나씩 장착할 것이다.
오늘도 내일도 내게 말할 것이다. 하루만, 딱 하루만 버티면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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