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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May 10. 2020

지가 뭔데?

몇일새 더워진 날을 불평하며 편의점에 들어갔다. 목을 축일 게 없나 냉장고 앞을 서성이는 사이, 뒤를 이어 한 젊은 여자 손님이 들어왔다. 그녀는 들어오기 전부터 하던 전화 통화를 이어가며 편의점 출입문을 통과했다. 편의점 종업원의 인사를 보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커피를 마셔야 하나, 카페인 없는 과즙음료를 마셔야 하나 고민했다. 가격과 제조사를 비교하고, 이왕이면 원 플러스 원을 고르느라 한참을 서성였다. 음료 하나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나 싶었다. 편의점에 들어와 돈 아낄 생각을 하는 내가 웃기기도 했다.


나름 합리적인 소비(!)를 하느라 안 그래도 머리가 아픈데, 더욱 나를 힘들게 하는 게 있었다. 끊이지 않는 그녀의 통화였다. 아마도 주변을 아랑곳 않는 인물이지 싶었다. 나도 아랑곳 않으려 노력했다. 듣고 싶지 않았기에. 그러나 인생은 아이러니하다. 듣고 싶지 않으면 더 들리는 법이다.


불쾌하고 불편했다. 더군다나 그녀의 통화는 즐겁거나 행복하지 않았다. 내가 예민한 사람인 걸 감안해도, 온갖 불평과 불만을 받아내는 일은 꽤 불쾌했다. 그녀에게 공중전화 부스를 찾아주고 싶었다.


지가 뭔데? 지가 지 입으로 지 맘대로 얘기했으면 책임을 져야지. 안 그래? 왜 아가리를 털어! 지 남자 친구한테 헤어지자고 지 입으로….


그녀의 속사정을 알 길은 없지만, 아마도 자기 말에 책임을 지지 못하는 친구는 둔 게 못내 분했던 모양이다. 거기다 남녀문제까지 얽혀있었다. 그녀의 속사포 랩에 내 마음의 평온까지 깨졌다. 무엇보다, 그토록 짧은 시간에 저토록 많은 '지'를 반복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녀의 감정 요동을 잠재우지 못할 바엔 피하자 생각했다. 서둘러 과즙음료를 챙겨 계산을 했다. 편의점 문을 나섰다. 내가 나서며 울린 출입문 딸랑이가 심하게 춤을 추었다. 감히 예상해본다. 그 딸랑이가 춤을 멈춘 이후에도 그녀의 통화는 계속되었을 것이라고.


인간사 갈등의 반복이야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감정도 '습관'이라는 주장이 있다. 자신이 쉽게 화내는 경향이 있다면 여기에 문제의식을 가져봄직하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세상과 사람에 치여 지쳤다가도 금세 행복했으면 좋겠다. 내가 타인을, 타인이 나를 '지'라고 지칭하는 경우가 적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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