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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Sep 17. 2020

매일 약속이 있는 남자

그 약속을 잘 지키는 남자

퇴근 5분 전, 동료가 내게 묻는다.


  "저녁에 시간 돼요?"


  "아 오늘 약속 있어서요…."


동료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뜬다. 당연히 약속이 없을 줄 알았나 보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무슨 약속이요?"


  "나와의 약속이요."






난 매일 약속이 있는 사람이다. 술도 잘 못 먹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즐기지도 않는 내가 매일 만나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누구와의 약속이냐고, 뭐가 그리 바쁘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하면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코웃음 치거나. 응원해주거나.


응원해주는 사람들은 이미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내가 저녁에 무얼 할지 대강 알고 있다. 사실 이들은 내게 긴급 번개를 제안하지 않는다. 그래서 최소 일주일 전에 나의 스케줄과 참여 의사를 묻는다. 내가 너무 비싸게구나 싶지만 어쩔 수 없다. 내가 나를 만나는 시간은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다.


코웃음 치는 사람들은 아직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회식 자리 머릿수를 채울 누군가를 모집하는 중에 내가 눈에 들어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 그러고보니 오늘 그의 코웃음을 어디서 본 것도 같다. 어느 회식자리에서 꿈이 뭐냐고 내게 묻던 선배. 작가가 되고 싶다는 나의 대답에 곧바로 코끝으로 웃던 그 선배. 선배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이런 답변을 원했던 걸까.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나와의 약속이다. 우리는 그 누구보다 스스로에게 충실해야 한다. 스스로에게 솔직해야 한다. 그 충만함이 있어야 타인에게도 좋은 기분과 태도를 보일 수 있다. 그래서 미리 약속된 일정이 아닌 이상 가지 않는다. 억지로 가보았자 거기에 제대로 집중할 수 없다. 나는 내가 그런 사람임을 알고 있다.


돌이켜보면, 야근과 회식이 매일같이 반복되던 때가 제일 힘들었다. '집-학교'를 반복하던 시절보다 '집-회사-회식'을 반복하던 때가 더 지옥이었다. 씻고 자기에도 바빴기에, 나를 버려두었다. 빨래감도 나도 그냥 내버려 두었다. 뒤집어 벗어놓은 양말. 그게 꼭 내 처지였다.


거절을 연습하고 삶에 적용하기까지 참 많이도 돌아왔다.


이젠 약속이 거의 없다. 약속이 점점 줄더니 이젠 나를 찾는 사람이 많지 않다. 꼭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서운하냐고 물으면 조금은 그렇다 말하고 싶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으냐 물으면 그건 아니라고 답하고 싶다.


덕분에 나는 매일 나를 만난다. 그 약속을 매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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