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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Dec 29. 2019

어느 엘리베이터에서

그의 뒷모습은 고단했다

힘이 들땐 하늘을 봐. 나는 항상 혼자가 아니야. 비가 와도 모진 바람 불어도 다시 햇살은 비추니까.
 눈물나게 아픈 날엔 크게 한 번만 소리를 질러봐. 내게 오려던 연약한 슬픔이 또 달아날 수 있게.
-서영은 노래 <혼자가 아닌 나> 중에서


지난 10월, 저녁 약속 장소로 향하는 길이었다. 의외로 쌀쌀한 날씨에 옷깃을 여미며 걸음을 재촉했다. 친구와 만나기로 한 식당이 있는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식당과 학원이 몰려있는 곳이었다. 이 곳을 찾은 이유도, 연령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있는 그런 데 였다. 밥을 먹거나 학원에 가기 위한 발걸음이 가득한 동네였다.


이전에도 방문한 경험이 있었기에 어렵지 않게 엘리베이터를 찾았다. 지하 2층에서 올라온 엘리베이터를 잡아탔다. 거기에는 노부부가 타 있었고, 나와 낯선 어린이가 같이 오르게 되었다. 초등학교 3~4학년 정도로 보이는 그 남학생은 제 몸에 비해 큰 백팩을 메고 있었다.


5층까지 이동하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일면식도 없는 타인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는 일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어색함을 참지 못한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하이고. 요새 애들은 하늘 볼 새도 없다는데…"


짧은 침묵을 깨는 노신사의 이야기였다. 나와 같이 엘리베이터에 올랐던, 검정 백팩을 메고 바닥을 응시하던 학생을 겨냥한 말이었다. 혼잣말인지 동행한 노부인에게 건넨 말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암만 바빠도 별도 보고, 산에 나무도 보고 그래애."


어린 학생은 당황스러운지 들릴 듯 말 듯 대답했다. 어린이의 뒷모습에서 삶의 고단함이 느껴졌다. 엘리베이터가 3층에 이르렀다. 학생이 조용히 내렸다. 3층은 여러 학원이 몰려있는 층이었다.


목적지인 5층에 내려 친구와 저녁을 먹으면서도 마음이 불편했다. 안타까워하던 노신사의 이야기가 귓전에 맴돌았다. 밥을 먹다 말고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 학생이 저녁을 먹었을지, 때웠을지. 그것도 아니면 굶었을지.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의 학창 시절을 떠올렸다. 밤늦게 집으로 돌아가던 고3의 나는, 완벽하게 검은 하늘 아래서 가수 서영은의 <혼자가 아닌 나>를 불렀다. '힘이 들땐 하늘을 봐'라고 했는데, 올려다보니 눈물만 나왔다. '비가 와도 모진 바람 불어도 다시 햇살은 비추니까'라고 했는데, 햇살은 비출 것 같지 않았다.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지, 다들 이렇게 살아가는지 누군가에게 묻고 싶었다. 그런데, 그렇게 밖에 살 수 없는 사회를 물려준 것 같아 그 학생에게 미안했다.


그 학생을 다시 만난다면 조용히, 말해주고 싶다.


저녁은 거르지 말라고.

가끔은 하늘을 올려다봐도 괜찮다고.

자주 하늘을 볼 수 없는 세상이어서 미안하다고.




|커버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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