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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Jun 03. 2021

할아버지를 보았다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 산비탈 위에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나를 내려다보는 것 같기도 했다. 언뜻 보기엔 우리 할아버지 같았다. 뒷짐을 지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인자하게 미소 짓는 것 같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할아버지를 뵈러 할아버지 산소에 찾아간 것이니, 할아버지께서 친히 마중을 나오실 수도 있는 일이었다. 너무 짧았던 순간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눈을 씻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땐 거기엔 아무도 없었으니까.




부모님을 따라 할아버지 산소에 자주 간다. 기일이나 어버이날, 그리고 또 특별한 날에 간다. 새해 인사를 드리러 가기도 하고, 손자의 취직 소식을 전하러 가기도 한다.


묘역 입구에서 산 꽃을 올리고, 돗자리를 깔고, 절을 한다. 할아버지의 안부를 묻고, 감사의 소식을 전하고, 막걸리를 부어드리고, 주변을 간단히 정리한다. 아빠와 엄마는 허공에 대고 할아버지께 말씀을 건넨다. 대답이 없지만 괜찮다. 할아버지는 원래 말씀이 많지 않으셨다.


엄마 아빠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자주 산소를 찾는 것일까. 여기에 대해 생각해보려다 그만둔 적이 있다. 이유를 찾아서 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막걸리 한잔 부어드리러, 대답 없는 누군가를 만나러, 반나절 또는 그 이상의 시간을 투자한다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지만 효율만으로 세상일을 설명할 수는 없다. 세상에 없는 이를 기억하고 찾아뵐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고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작은 증거일 수 있다.


할아버지 산소에는 할머니도 같이 계신다. 모두들 아버님 아버님 하며 할아버지를 찾는다. 할머니를 사람은 많지 않지만 할머니는 서운해하지 않으실  같다.  적은 없지만 왠지 그럴  같다.




세상에서 제일 높은 주차장. 산비탈을 돌고 돌아 그곳에 차를 주차하고 우리는 다시 할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내려간다. 갈 때마다 풀은 무성하고 나무들은 부쩍 커 있다. 다만 할아버지 산소는 변함이 없다.


묘비 뒤편에 적힌 아빠와 엄마의 이름을 볼 때면, 이분들도 결국 누군가의 아들 딸 사위 며느리라는 사실에 새삼 놀란다. 어른인 동시에 누군가의 아들과 딸일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할아버지 산소에서 할아버지를 만난 일은 아직까지 생생하다. 그때의 난, 그 모습을 보고도 침착했다. 아주 잠깐, 뛰어올라가서 누구인지 확인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냥 할아버지라고 믿기로 했다. 환영인지 헛것인지 착각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할아버지라고 믿기로 했다.


자랑스러운 손자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주변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달라고 소망했다. 그리고 꿈을 그리다 올려다본 그 산비탈. 할아버지는 이내 사라졌지만 그 기억은 점점 또렷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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