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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Feb 04. 2020

나는 나를 지키며 일하기로 했다

정말 내가 아니면 안 되는 걸까?

꿀보직은 직장인의 로망이다.


인사철만 되면 마음이 뒤숭숭하다. 하던 업무를 계속해야 할지, 새로운 업무를 해야 할지. 승진에 도움되는 일을 해야 할지, 내 행복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지. 같은 월급 받고 편하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일은 손에 안 잡히고 풍문만 무성하다. 오만가지 생각을 한다. 꿀보직을 위한 이런 시나리오를 써보고, 저런 시나리오를 써본다. 최상의 시나리오를 간택한다. 슬픈 건, 최상의 시나리오가 최상의 결과를 보장하진 않는다.


과거에 직장이 모든 것을 책임지던 시절이 있었다. 하나의 직장이 취업과 승진과 가족의 생계와 노후까지 해결해주었다. 그렇게 우리의 부모 세대는 평생직장에 충성했다. 우리 세대는 경험하지 못한 정말 '소설' 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우리 세대는 '소설'이 아닌 '현실' 속에 있다. 직장은 직장이다. 직장은 내가 아니다. 직장을 벗어난 곳에서 나를 찾고 싶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현실에서, 나의 가능성을 시험하고, 진짜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다.




신입일 때, 내가 아님 안 된다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어려운 일을 도맡아 했다. 인정받으며 일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야근이 일상이 되었다. 주말에도 출근했다. 내가 '적임자'라서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맡는다는 이상한 논리로 자신을 위로했다.


술자리에서 어느 선배가 물었다. 왜 그렇게 열심이냐고. 그 선배는 정말 순수하게, 궁금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필요 이상으로 열심인 이유를 물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게.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그날 이후, 어려운 일을 살짝 피해보았다. 내가 없어도 그 일은 잘 추진되었다. 나 하나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갔다. 내가 아니면 안 될 일? 그런 건 없었다! 내가 아니어도 나를 대신할 사람들은 차고 넘쳤다. 좀 슬펐지만 현실이 그랬다. 무리하게 스스로를 혹사하며, 굳이 어려운 자리를 지킬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고생하는 사람은 계속 고생하는 시스템이었다. 일은 일을 만들었다. 일은 호구에게 몰렸다. 자기 목소리를 낼 줄 모르는 나는 호구였다. 어느 순간 직장의 '부품'이 된 나를 발견했다. 거기엔 성실한 '직장인 A'가 있었고, 나는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하기로 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버리기로. 투머치한 책임감으로 스스롤 힘들게 하지 않기로.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 모른다. 어느 누구보다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선 부단히도 나를 버려야 했다. 나를 잃고 나서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꿀보직을 꿈꾼다.


올해는 나를 지키며 일하기로 했다. 잘 될지는 의문이다. 강권과 선택 사이에서 나는 또 어떤 일을 하게 될까. 언젠가 어느 부장님이 내게 건넨 말이 떠오른다. 일 년간 고생했다며 내 어깨를 툭툭 치며 건넨 말. 부서 이동 즈음하여 무심하게 건넨 말. 내년에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올해는, 나도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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