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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Feb 02. 2020

손이 노래지도록 귤을 먹었다

귤 그리고 형

겨울이 오면 생각나는 과일이 있다. 바로 귤!


원래 귤을 좋아하진 않는다. 아니. 있으면 먹는데, 굳이  손으로  오진 않는다. 장을 보러 가도 귤에는 손이  간다. 유별나게 좋아하는 과일이 아니어서일까. 아님 흔하고  과일이라는 인식 때문일까.


그럼에도 매년 귤을 먹는다. 예식장으로 향하는 관광버스에서 나눠준 귤. 엄마가 사서 보내주신 귤. 장모님이 내 손에 쥐어주신 귤. 어느 모임에서 가져온 귤. 누가 보내준 귤. 누가 사온 귤….


그렇게 이번 겨울에도, 우리 집 한쪽에는 귤 한 박스가 있었다. 오랜만에 우리 집을 방문한 지인이 사 온 귤이었다. 워낙 가까운 사이라 빈손으로 와도 서로 민망하지 않을 텐데, 그 형은 굳이 귤 한 박스를 사들고 왔다. 받기 미안했지만 가까운 사이니까 편하게 받았다.


그리고 매일 저녁 귤을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심심한 입에 귤을 넣었다. 새콤달콤함이 톡, 입안에 퍼졌다. 한 개, 두 개, 세 개, 네 개…. 멈출 수가 없었다. 그 귤은 지나치게 맛있었다! 나는 손이 노래지도록 귤을 먹었다. 귤 까먹는 재미에 1월이 훌쩍 지나갔다.


먹으면 먹을수록 손끝이 노르스름 해졌다. 귤껍질에서 나온 과즙이 엄지와 검지 손톱 사이를 물들였다. 손을 씻어도 잘 빠지지 않았다. 노란 손 때문에 자꾸만 형이 생각났다. 형의 마음이 내 손에 기억되었다.


이제 귤은 딱 두 개 남았다. 오늘 저녁을 먹고 해치울 계획이다. 아쉽지만 형의 마음을 남김없이 먹어 치울 것이다. 그리고 내일 내 손으로 귤 두 박스를 살 거다. 이제 그의 손이 노래질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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