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이곳을 떠난다. 후련하고 허전한 맘이다. 이놈의 애증관계는 퇴사 전날까지 나를 괴롭힌다. 어젯밤, 송별회도 했건만, 아직 실감이 안 난다.
일 년간 몸 담았던 곳이다. 첫 직장도 아니고 어디다 자랑할만한 곳도 아니었지만, 계속 다닐 이유는 충분했다. 좋은 동료들, 그리 나쁘지 않은 부장님, 부족하지 않은 연봉까지. 내가 이곳을 떠나는 이유는 하나다. 쉬고 싶어서. 아니 또 있다. 내 삶을 찾기 위해서.
백수인 것은 두렵지 않다. 지금까지 달려오지 않았느냐고, 언제 쉬어보겠냐고, 생각했다. 나중에 정 안되면 알바라도 해야지. 설마 굶어죽겠어. 나는 당당한 퇴사자가 되고 싶었다. 그토록 꿈에 그리던, 퇴사자 인 더 하우스.
저기 부장님이 보인다. 직언직설의 대가, 우리 부장님. 아직까지 난 그의 표정을 읽을 수 없다. 기분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도통 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래도 직언직설과 포커페이스만 빼면 썩 괜찮은 상사다.
그 앞에 앉은 김 대리가 일어선다. 정 대리도 일어선다. 한 대 태우러 가려나보다. 내가 퇴사하는 이유를 그들도 알 것이다. 그들도 이곳이 좋기만 한 건 아니기에.
나도 일어선다. 조용히 티 나지 않게, 문서를 정리하고 세단기에 종이를 넣는다. 세단기 돌아가는 소리가 오늘따라 크다. 괜히 미안한 마음에 세단기를 멈춘다. 그게 마지막 예의라도 되는 것 마냥. 나머지는 내일 아침 일찍 와서 해야지. 퇴사 당일 업무 치고는 꽤 파쇄적이다.
정확한 퇴사일은 내일이다. 내일은 출근했다 오전에 들어가도 된단다. 하긴. 이쯤되면 있어봐야 서로 불편하다. 내일은 남은 문서를 부수고 저 문을 박차고 나갈 것이다. 세상 속으로 당당히 걸어 나갈 것이다.
퇴근 10분 전. 부장님이 나를 부른다. 쪼르르 가서 그 앞에 선다. 설마 일을 시키는 건 아니겠지. 인수인계서를 너무 대충 써서 그런가. 그리고 그의 한 마디.
민재야, 네가 행복했음 좋겠어.
그 역시 알고 있었다. 내가 퇴사하는 이유를. 어쩌면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저 분이 저렇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분이었나. 마음이 따스해진다. 저도 제가 행복했음 좋겠네요, 라는 말을 속으로 삼키며 나는 씨익 웃는다.
휑한 퇴사 예정자의 책상 위, 처형을 기다리는 종이 뭉치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커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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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llWelling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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