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젠 우리 집 아이 유치원 발표회가 있었다.
요즘엔 유치원도, 학교도 행사에
워낙 다양한 이름을 붙이니
발표회라고 해야 할지 학예제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예전 나 어릴 때 하던 재롱잔치 느낌이다.
악기 연주도 하고,
태권도 시범도 보이고,
노래도 부르고,
율동도 하고.
아, 영어 발표도 했다.
놀라웠다.
공연은 5, 6, 7세 각 1 반씩 1타임으로 엮어져 있어
7세인 우리 아이 반 공연에다 5 ,6세 아이들의 재롱까지 덤으로 볼 수 있었다.
5세 반 한 아이가
첫 공연 내내 엄마를 찾아 울부짖었다.
관객석에 앉아 있는 엄마가 보이지 않는다며 악기를 두 손에 들고 그야말로 엉엉 울었다.
그런 아이를 보고 있을 그 아이 엄마의 마음이 어떨까 싶어 첫 공연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그 5세 반 아이의 두 번째 공연.
엉엉 울던 그 아이가 울음을 삼키며
양손으로 눈물을 닦고 또 닦는다.
엄마가 어디에 있는지 알았는지 엄마에게 하트 한 번 날리고 눈물 한 번 닦고 한다.
음악이 나오자 열심히 연습했던 태권도 실력을 최선을 다해 보여줬다.
마음이 한 결 편해지면서 다른 아이들 표정도 보게 되었다. 아이들 모두 실수하지 않으려고, 잘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아이들은 뭐 때문에 저렇게 열심히 하고 있나.
아이들의 관객은 오로지 엄마 하나, 아빠 하나였다.
아이들은 무대에 나오자마자 우리 엄마가,
우리 아빠가 어딨는지 찾기 바쁘다.
엄마, 아빠한테 잘하는 거 보여주려고,
놀이터에도 못 가고,
그 어려운 노래와 동작들을 연습하고
또 연습했겠지.
우리 집 아이도 발표회가 있기 전
종종 내게 이야기했다.
"엄마, 나 왜 발표회 연습 열심히 하는지 알아?"
"왜 열심히 하는 건데?"
"엄마 보여주려고."
아이들한테는 부모가 세상의 전부인가 보다.
부모에게 인정받으려고 애쓰며
하루하루 성장한다.
발표회가 끝나고 다시 학교로 왔다.
공포 영화에서 공포를 느끼는 이유에 대한 내용을 다루는 수업이라 농담 삼아
"민준아,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뭐야?"
라고 물었다.
대뜸,
너무도 진지한 얼굴로
"우리 엄마요."
한다.
분위기가 싸해졌다.
서둘러 다른 이야기로 수습하고
교실의 아이들을 둘러봤다.
문제를 풀고 있는 아이들,
풀다 지쳐 잠든 아이들이 문득 안쓰러웠다.
이 아이들도 엄마, 아빠의 인정을 위해
그토록 애써왔겠지. 지금도 그런 거겠지.
아이들은 칭찬을 먹고 자란다.
작은 애도, 큰 애도 마찬가지다.
우리 집에 있는 아이도,
학교에 있는 아이도
많이 칭찬해 줘야겠다.
많이 인정해 줘야겠다.
애쓰지 않아도 존재만으로도 가치 있는 아이라고 크게 이야기해 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