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 투자의 첫 경험을 하다
지금은 신림동도 많이 변했지만, 제가 살던 90년대 말의 신림동에는 돈 없는, 소위 가난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달동네까지는 아니었지만 여유롭게 생활하는 집은 드문 편이었죠. 그곳에 살기 시작하면서 여러 이웃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의아했던 점은 생각보다 아끼며 사는 사람은 드물었다는 겁니다. 역설적으로 가난했기 때문에 더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항상 쪼들린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착실하게 아껴 보다 나은 환경으로 옮겨가겠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은 의외로 적었죠. 씀씀이 또한 적지 않아 보였고요.
신림5동에서 4동으로 한번 이사를 하며, 신림동에서만 거의 6년을 살았습니다. 두 집 모두 다세대 주택이었죠. 여름이 무척 더웠던 기억이 나네요. 워낙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보니 환기가 잘 되지 않았고, 그러다보니 여름에는 창문을 열어 놓아도 바람이 잘 통하지 않아 매번 찜통더위를 실감하며 지내야만 했습니다. 그래도 겨울에 비하면 여름이 낫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가스비를 아끼기 위해 최소한의 난방만 하며 살았으니까요. 난방을 하더라도 잠들기 전까지만 하고, 잘 때는 항상 끄고 잤죠. 그렇기 때문에 집에서 반팔, 반바지로 지낸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겨울이 되면 항상 내복은 기본이고 긴 팔, 긴 바지,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패딩조끼까지 입혀 재웠죠.
그렇게 살았음에도 보유자산은 쉽게 늘어나지 않았습니다. 제 연봉의 반 가까이를 저축하며 살았지만, 직급도 낮고 연봉 또한 많지 않다보니 모이는 절대 액수는 작을 수 밖에 없었죠. 가끔 1년에 얼마씩 모아야 보다 괜찮은 환경으로 이사갈 수 있을지 그리고 꿈에 그리는 집을 살 수 있을지 계산기를 두드려 보곤 했지만 수치상으로는 요원해 보이기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보유하고 있던 적금의 만기가 도래했습니다. 이 자금은 약 8개월 후 이사할 집의 전세금으로 보탤 예정이었죠. 기간이 짧아 1년 정기예금으로 넣을 수도 없고,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바로 옆 부서였던 자금팀의 대리님을 찾아갔습니다. 조언을 구하자 그 대리님 왈,
“그냥 펀드에 넣어 놔.”
응? 펀드? 펀드가 뭐지? 당시엔 정기예금, 적금과 같은 저축 밖에 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주식, 펀드투자에 대해서는 아예 모르던 상태였죠. 물어보니 그냥 그 정도의 기간으로 투자하기 좋은 상품이라고만 설명해 주시더군요.
회사 바로 옆 건물에 지금은 KB증권으로 이름을 바꾼 현대증권사가 있었습니다. 시간을 내 그 곳을 방문했죠. 펀드 가입하려 왔다고 하니 앉으랍니다. 은행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 웬지 그런 분위기에 주눅드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상담직원이 뭐라 뭐라 설명해 주기에 고개를 끄덕여가며 듣긴 했지만, 솔직히 잘 못 알아듣겠더군요. 질문을 해야 하는데 뭘 대충이라도 알아야 하지요... 어찌어찌하다보니 도장찍고 펀드 통장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첫 가입이라며 조그만 기념품도 받았던 것 같네요. ‘오호, 증권사에서는 이런 것도 주는구나~’ 앞으로 증권사랑 친해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8개월 후 펀드를 해지했습니다. 총 금액을 보니 원금에 무려 8%의 이자가 붙어 있더군요. 헛, 이런 횡재가? 연으로 따진다면 12%의 수익률이었습니다. 당시 1년짜리 정기예금 금리가 5% 정도였을 겁니다. 무려 2배가 넘는 수익을 거둔거죠. 펀드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어졌습니다. 모르고 했는데도 이 정도의 수익률이라면, 제대로 공부한다면 더 높은 수익률을 거둘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사실 순서가 뒤바뀌긴 했죠. 선 ‘묻지마 투자’ 후 공부를 시작한 거니까요. 어쨌든 첫 펀드의 좋은 기억이 저를 투자의 세계로 끌어들였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펀드에 대해 독학으로 공부한 후, 본격적으로 두 번째 펀드 투자를 시작했습니다. 공부를 하고나니 증권사 직원의 이야기가 조금 들리더군요. 뿌듯했습니다. 그리고 투자를 통해 금방 돈을 불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웬걸요! 최소 10% 이상의 수익을 생각하며 투자했던 펀드가 1년이 되자 그만 마이너스가 되버린 겁니다.
아찔하다 못해 미칠 것 같았습니다. 참다 못해 상담했던 증권사 직원을 찾아가자 무덤덤한 목소리로 주식시장이 안 좋아 그런 거라며 기다려 보랍니다. 기다리고 있으면 원금 회복은 물론 수익까지 날 수 있는 거냐고 묻자 아마 그럴 것이라며 약간 얼버무리더군요. 웬지 미더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자신감 있는 표정, 말투를 보여주더니... 기다리는 것 외에는 별 다른 방법도 없었습니다. 괜히 펀드 투자란 걸 해서 이렇게 피같은 돈을 손해보는구나 하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또한 펀드에 눈을 뜨게 만들어 준 옆부서 대리님까지 미워졌습니다. 그냥 계속해서 예ㆍ적금이나 하라고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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