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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칸양 Nov 15. 2017

가을 제주,
흩날리는 억새의 춤에 취하다 #2

17년 만의 제주 여행, 그 추억을 남기며


☞  가을 제주, 흩날리는 억새의 춤에 취하다 #1




3.


차량이 제법 많은 제주시내를 벗어나니 탁트인 전망이 펼쳐진다. 비로소 제주에 왔다는 기분이 든다.      

첫날 일정은 제주 동부권 투어다. 다음과 같이 오후 일정을 잡아 놓았다.     


제주공항  해변 투어(함덕, 김녕, 월정리) → 김녕 미로공원  아끈다랑쉬 오름  금백조로  사려니 숲길     


렌터카를 타고 출발한 시간이 오후 1시 반쯤 되니 모두 다 돌아보기엔 상당히 빡빡한 일정이라 할 수 있다. 뭐 대충 보고 인증샷 찍듯 돌아다니면 충분히 소화하겠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혹여나 다 못 보면 내일보면 되는 거고, 또 이번 여행에서 못본다 한들 다음에 또 와서 보면 되지 않겠는가. 그저 한군데, 한군데마다 제대로 느끼고 즐기는게 중요할 뿐이다.


함덕 해수욕장 방향으로 차를 틀어 가다보니 차창 왼쪽으로 드디어 탁 트인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아~~ 좋다! 바다 내음을 맡고 싶어 창문을 살짝 여니 쏟아져 들어오는 강한 바람! 우와, 정말 장난 아니다. 그래도 좋다. 하지만 그 바람은 바다 가까이 갈수록 더 세졌고, 마침내 함덕 해수욕장에 도착하니 그저 엄청나다고 할 정도의 바람이 되어 있었다. 이건 그냥 바람이 아니여, 태풍급 강풍인 것이여. 바다 전망이 잘 보이는 곳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얼마나 바람이 센지 몸이 휘청휘청할 정도다. 집채만한 파도...는 뻥이고, 그래도 상당히 크고 센 파도들이 해변을 휩쓸고 있었다. 좋긴 좋은데, 풍경을 음미하며 한가로이 서있긴 애초에 불가능했다.


아쉽네. 날씨만 좋으면 해수욕장 백사장에 앉아 바다만 바라보고 있어도 좋을텐데... 뭐 그래도 차에 앉아 바라보는 제주바다는 운치가 있어 좋았다. 해변도로를 타고 함덕 옆에 위치한 김녕 해수욕장으로 이동한다. 마침 팝페라 가수 임형주의 <You raise me up>이 흘러나오는데, 그의 목소리와 밖의 풍경이 너무 잘 어울려 짜르르한 뭉클함을 자아낸다. 그야말로 여행이 감동이 되는 순간이다. 옆에 앉은 아내에게 “좋지?”라고 묻자, 말없이 넉넉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무슨 말이 필요하랴. 이 감동의 순간에.


김녕에 위치한 작은 항구를 둘러보고 다시 이동하던 중 길 옆으로 방파제가 보인다.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제대로 바다를 맛보고 싶었다. 차를 세우고 바다 안쪽으로 들어간다. 눈을 뜰 수가 없을 정도다. 몸도 휘청거린다. 게다가 방파제 옆을 때리는 파도의 파편들이 사방을 날아다닌다. 안쪽으로 더 들어가니 정자가 있다. 그리고 바다와 접한 검은 화강암의 바위들. 사진을 찍기 위해 셀카봉을 들지만 바람 때문에 초점 잡기가 만만치 않다. 미소를 띠어 보려 하지만, 얼굴 표정 또한 내 것이 아니다. 이 상황이 오히려 웃기기만 하다. 품격을 차릴 새가 없다. 그저 최선을 다할 뿐!^^



다시 해안도로를 가다보니 다시 바다 쪽으로 들어가는 작은 길이 하나 보인다. 오호, 그 길 옆으로 억새들이 쭉 펼쳐져 있다. 그 아이들이 온몸을 흔들며 우리를 부르고 있다. 초청에 응하지 않을 수 없다. 당근 가야지. 좁은 길을 천천히 들어가는데 마치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듯 아름답다. 황홀하다. 눈을 감고 조금만 더 들어가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동화왕국에 닿을 것만 같다. 길은 짧았다. 하지만 그 짧음을 상쇄하고 남을 정도로, 아니 그 이상의 여운을 주고 있었다. 다행스럽게 바람이 조금 약해진 듯 싶었다. 바다 표면으로 햇살이 비추자 바다는 금빛옷을 입은 듯 반짝반짝 거린다. 눈이 부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풍광이다. 이 여행, 정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4.


월정리 해변도로로 들어서자 바다를 마주한 쪽으로 이쁘고 개성있는 까페들이 줄지어 서 있다. 그래서일까. 젊은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띈다. 여기서 바다를 보며 차 한잔 할까, 하다가 우리가 아직 점심도 먹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그 생각이 들자 살짝 허기가 느껴진다. 그래, 일단 제주바다도 실컷 맛보았으니, 이제는 제주의 음식을 맛보아야지. 점심은 ‘벵디’라고 하는 퓨전 음식점을 골라 두었었다. 돌문어 덮밥으로 유명한 곳인데, 수요 미식회에도 나왔던 곳이란다. 뭐 미디어의 소개를 그렇게 신뢰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쁘진 않겠다 생각했고, 아내가 그 맛이 궁금하다 한 곳이었다. 사진상으로 본 비주얼도 훌륭해 보였고.


월정리에서 약 10분 여를 달려 벵디에 도착했다. 그렇게 크진 않았는데 사람은 제법 많았다. 오후 4시쯤 되었는데 이 정도의 인원이라면, 점심시간에는 대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문은 이 식당의 대표메뉴라 할 수 있는 돌문어덮밥과 뿔소라덥밥을 시켰다. 15,000원과 13,000원. 생각에 따라 비쌀 수도, 적정할 수도 있다. 맛을 보면 더 확실해지겠지. 주문을 하고 앉으려는데 바다를 보며 정면으로 보며 먹을 수 있는 자리는 다 차있었다. 할 수 없이 측면자리에 앉았는데 뭔가 약간 손해보는 느낌이다. 이왕이면 다홍치마 아니겠는가.


잠시 후 식사가 나왔다. 사진에서 본 것처럼 비주얼은 괜찮아 보인다. 먼저 뿔소라덥밥. 여러 채소 위에 간장소스를 뿌려 먹는데, 맛 자체는 특이하지 않다. 다만 소라가 씹힌다는 점이 다를 뿐. 그냥 무난한 수준. 이번에는 돌문어덮밥. 가위로 밥 위에 놓인 문어 다리를 먹기 좋게 자른다. 그리고 한 점. 음~ 쫄깃하고 고소하다. 이번엔 다시 소스로 비빈 밥과 한 점. 약간 매콤 달콤한 소스가 문어의 쫄깃함, 밥의 감칠 맛과 어울려 꽤 괜찮은 하모니를 이룬다. ‘어때?’하고 묻자, 아내가 ‘으음~’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괜찮다는 표현. 적당한 허기, 바다가 보이는 풍광 그리고 따스한 밥과 국물. 이 또한 행복한 순간이다.



한 절반쯤 먹었을까? 그 동안 바다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식사할 수 있는 자리가 났다. 미안하지만 그 자리로 옮겨도 되겠냐 묻자 기꺼이 그러란다. 자리를 옮기자 확실히 전망이 좋다. 밥 한 숟갈 뜨고 경치를 바라본다. 여전히 강한 바람, 억센 파도가 바다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 곳은 여유있고 따스한 식사 공간. 아무래도 여기 식사 값의 절반은 이 전망값이 아닐까 싶다.





차칸양

Mail : bang1999@daum.net

Cafe : 에코라이후(http://cafe.naver.com/ecolifuu) - 경제/인문 공부, 독서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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