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만의 제주 여행, 그 추억을 남기며
차량이 제법 많은 제주시내를 벗어나니 탁트인 전망이 펼쳐진다. 비로소 제주에 왔다는 기분이 든다.
첫날 일정은 제주 동부권 투어다. 다음과 같이 오후 일정을 잡아 놓았다.
렌터카를 타고 출발한 시간이 오후 1시 반쯤 되니 모두 다 돌아보기엔 상당히 빡빡한 일정이라 할 수 있다. 뭐 대충 보고 인증샷 찍듯 돌아다니면 충분히 소화하겠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혹여나 다 못 보면 내일보면 되는 거고, 또 이번 여행에서 못본다 한들 다음에 또 와서 보면 되지 않겠는가. 그저 한군데, 한군데마다 제대로 느끼고 즐기는게 중요할 뿐이다.
함덕 해수욕장 방향으로 차를 틀어 가다보니 차창 왼쪽으로 드디어 탁 트인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아~~ 좋다! 바다 내음을 맡고 싶어 창문을 살짝 여니 쏟아져 들어오는 강한 바람! 우와, 정말 장난 아니다. 그래도 좋다. 하지만 그 바람은 바다 가까이 갈수록 더 세졌고, 마침내 함덕 해수욕장에 도착하니 그저 엄청나다고 할 정도의 바람이 되어 있었다. 이건 그냥 바람이 아니여, 태풍급 강풍인 것이여. 바다 전망이 잘 보이는 곳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얼마나 바람이 센지 몸이 휘청휘청할 정도다. 집채만한 파도...는 뻥이고, 그래도 상당히 크고 센 파도들이 해변을 휩쓸고 있었다. 좋긴 좋은데, 풍경을 음미하며 한가로이 서있긴 애초에 불가능했다.
아쉽네. 날씨만 좋으면 해수욕장 백사장에 앉아 바다만 바라보고 있어도 좋을텐데... 뭐 그래도 차에 앉아 바라보는 제주바다는 운치가 있어 좋았다. 해변도로를 타고 함덕 옆에 위치한 김녕 해수욕장으로 이동한다. 마침 팝페라 가수 임형주의 <You raise me up>이 흘러나오는데, 그의 목소리와 밖의 풍경이 너무 잘 어울려 짜르르한 뭉클함을 자아낸다. 그야말로 여행이 감동이 되는 순간이다. 옆에 앉은 아내에게 “좋지?”라고 묻자, 말없이 넉넉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무슨 말이 필요하랴. 이 감동의 순간에.
김녕에 위치한 작은 항구를 둘러보고 다시 이동하던 중 길 옆으로 방파제가 보인다.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제대로 바다를 맛보고 싶었다. 차를 세우고 바다 안쪽으로 들어간다. 눈을 뜰 수가 없을 정도다. 몸도 휘청거린다. 게다가 방파제 옆을 때리는 파도의 파편들이 사방을 날아다닌다. 안쪽으로 더 들어가니 정자가 있다. 그리고 바다와 접한 검은 화강암의 바위들. 사진을 찍기 위해 셀카봉을 들지만 바람 때문에 초점 잡기가 만만치 않다. 미소를 띠어 보려 하지만, 얼굴 표정 또한 내 것이 아니다. 이 상황이 오히려 웃기기만 하다. 품격을 차릴 새가 없다. 그저 최선을 다할 뿐!^^
다시 해안도로를 가다보니 다시 바다 쪽으로 들어가는 작은 길이 하나 보인다. 오호, 그 길 옆으로 억새들이 쭉 펼쳐져 있다. 그 아이들이 온몸을 흔들며 우리를 부르고 있다. 초청에 응하지 않을 수 없다. 당근 가야지. 좁은 길을 천천히 들어가는데 마치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듯 아름답다. 황홀하다. 눈을 감고 조금만 더 들어가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동화왕국에 닿을 것만 같다. 길은 짧았다. 하지만 그 짧음을 상쇄하고 남을 정도로, 아니 그 이상의 여운을 주고 있었다. 다행스럽게 바람이 조금 약해진 듯 싶었다. 바다 표면으로 햇살이 비추자 바다는 금빛옷을 입은 듯 반짝반짝 거린다. 눈이 부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풍광이다. 이 여행, 정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월정리 해변도로로 들어서자 바다를 마주한 쪽으로 이쁘고 개성있는 까페들이 줄지어 서 있다. 그래서일까. 젊은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띈다. 여기서 바다를 보며 차 한잔 할까, 하다가 우리가 아직 점심도 먹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그 생각이 들자 살짝 허기가 느껴진다. 그래, 일단 제주바다도 실컷 맛보았으니, 이제는 제주의 음식을 맛보아야지. 점심은 ‘벵디’라고 하는 퓨전 음식점을 골라 두었었다. 돌문어 덮밥으로 유명한 곳인데, 수요 미식회에도 나왔던 곳이란다. 뭐 미디어의 소개를 그렇게 신뢰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쁘진 않겠다 생각했고, 아내가 그 맛이 궁금하다 한 곳이었다. 사진상으로 본 비주얼도 훌륭해 보였고.
월정리에서 약 10분 여를 달려 벵디에 도착했다. 그렇게 크진 않았는데 사람은 제법 많았다. 오후 4시쯤 되었는데 이 정도의 인원이라면, 점심시간에는 대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문은 이 식당의 대표메뉴라 할 수 있는 돌문어덮밥과 뿔소라덥밥을 시켰다. 15,000원과 13,000원. 생각에 따라 비쌀 수도, 적정할 수도 있다. 맛을 보면 더 확실해지겠지. 주문을 하고 앉으려는데 바다를 보며 정면으로 보며 먹을 수 있는 자리는 다 차있었다. 할 수 없이 측면자리에 앉았는데 뭔가 약간 손해보는 느낌이다. 이왕이면 다홍치마 아니겠는가.
잠시 후 식사가 나왔다. 사진에서 본 것처럼 비주얼은 괜찮아 보인다. 먼저 뿔소라덥밥. 여러 채소 위에 간장소스를 뿌려 먹는데, 맛 자체는 특이하지 않다. 다만 소라가 씹힌다는 점이 다를 뿐. 그냥 무난한 수준. 이번에는 돌문어덮밥. 가위로 밥 위에 놓인 문어 다리를 먹기 좋게 자른다. 그리고 한 점. 음~ 쫄깃하고 고소하다. 이번엔 다시 소스로 비빈 밥과 한 점. 약간 매콤 달콤한 소스가 문어의 쫄깃함, 밥의 감칠 맛과 어울려 꽤 괜찮은 하모니를 이룬다. ‘어때?’하고 묻자, 아내가 ‘으음~’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괜찮다는 표현. 적당한 허기, 바다가 보이는 풍광 그리고 따스한 밥과 국물. 이 또한 행복한 순간이다.
한 절반쯤 먹었을까? 그 동안 바다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식사할 수 있는 자리가 났다. 미안하지만 그 자리로 옮겨도 되겠냐 묻자 기꺼이 그러란다. 자리를 옮기자 확실히 전망이 좋다. 밥 한 숟갈 뜨고 경치를 바라본다. 여전히 강한 바람, 억센 파도가 바다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 곳은 여유있고 따스한 식사 공간. 아무래도 여기 식사 값의 절반은 이 전망값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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