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펀드 투자의 첫 경험을 하다
1996년 3월 31일, 이 날은 바로 제 결혼기념일입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22년이나 흘렀네요. 결혼 전 당시 제 수중에는 딱 700만 원이 있었습니다. 전세를 얻기도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죠. 직장에서 300만 원을 대출받고, 아내의 혼수를 줄여 마련한 1,000만 원을 보태 2,000만 원에 어렵사리 전셋집을 얻었습니다. 가난한 결혼이었죠.
결혼하고 얼마 있다가 아내가 첫 아이를 가졌습니다. 여러 이유로 아내는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죠. 첫 아이를 낳은 후 얼마 있다 둘째까지 가지게 되었습니다. 연년생 아이 둘을 키우며, 아내는 더 이상 직장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결혼하고 딱 10개월이 저희가 유일하게 맞벌이를 하던 기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쭉 외벌이로 살아오고 있죠.
외벌이였기 때문에 돈을 모으기 위해서는 최대한 지출을 줄여야만 했습니다. 매년 연봉의 반 가까이를 저축하며 살았죠. 하지만 직급도 낮고 연봉 또한 많지 않다 보니 모이는 절대 액수는 적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1년에 얼마를 모아야 보다 괜찮은 환경으로 이사 갈 수 있을지, 그리고 꿈에 그리는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을지, 종종 계산기를 두드려 보곤 했지만 수치상으로는 요원해 보이기만 했습니다.
그러던 2000년 초반의 어느 날, 보유하고 있던 적금의 만기가 도래했습니다. 이 자금은 약 8개월 후 이사할 집의 전세금으로 보탤 예정이었죠. 기간이 짧아 1년 정기예금으로 넣을 수도 없고,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바로 옆 부서였던 재무팀의 대리님을 찾아갔습니다. 조언을 구하자 그 대리님, 딱 한마디만 하시더군요.
“그냥 펀드에 넣어 놔.”
응? 펀드? 펀드가 뭐지? 당시엔 정기예금, 적금과 같은 저축밖에 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펀드 투자에 대해서는 아예 모르던 상태였죠. 쫓아다니며 물어보니 그냥 그 정도의 기간으로 투자하기 좋은 상품이라고만 설명해 주시더군요. 지금 생각해보면 귀찮아서 그렇게 대답했던 것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살짝 들기도 합니다만...
회사 바로 옆 건물에 지금은 KB증권으로 이름을 바꾼 현대증권이 있었습니다. 시간을 내 그곳을 방문했죠. 펀드 가입하려 왔다 하니 앉으랍니다. 은행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 왠지 그런 분위기에 주눅 드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상담직원이 뭐라 뭐라 설명해 주기에 고개를 끄덕여가며 듣긴 했지만, 솔직히 잘 못 알아듣겠더군요. 질문을 해야 하는데 뭘 대충이라도 알아야 하지요... 어찌어찌하다 보니 도장 찍고 펀드 통장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첫 가입이라며 조그만 기념품도 받았던 것 같네요.
‘오호, 증권사에서는 이런 것도 주는구나~’
앞으로 증권사와는 매우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죠.^^
펀드 가입 후 8개월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되어 펀드를 해지하러 갔죠. 금액을 보니 원금에 무려 8%의 이자가 붙어 있더군요. 헛, 이런 횡재가! 연으로 환산하면 무려 12%의 수익률이었습니다. 당시 1년짜리 정기예금 금리가 약 5% 정도였을 겁니다. 무려 2배가 넘는 수익을 거둔 거죠. 이를 계기로 펀드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어 졌습니다. 모르고 했는데도 이 정도인데, 제대로 공부한다면 훨씬 더 높은 수익률을 거둘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사실 순서가 뒤바뀌긴 했죠. 선 ‘묻지 마 투자’ 후 공부를 시작한 거니까요. 어쨌든 첫 펀드의 좋은 기억이 저를 투자의 세계로 끌어들였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펀드에 대해 인터넷과 책을 찾아가며 독학으로 공부한 후, 본격적으로 두 번째 펀드 투자를 시작했습니다. 공부를 하고 나니 증권사 직원의 이야기가 조금 들리더군요. 뿌듯했습니다. 그리고 투자를 통해 금방 돈을 불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정기예금에 재예치하라는 은행 직원의 권유를 매몰차게(?) 뿌리치고, 금액 전부를 과감히 펀드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1년 후. 최소 10% 이상의 수익을 기대하며 찾아간 증권사에서, 상담직원은 좀 미안하다는 말투로 제게 청천벽력 같은 사실을 통보했습니다. 고객님의 펀드가 원금손실이 나 있다고 말이죠. 헉! 마이너스 15%?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아찔하다 못해 미칠 것 같았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원금을 회복할 방법이 없냐고 묻자 그 직원 왈, 현재 주식시장이 안 좋아 그런 거니 기다리면 그래도 기회가 올 것이라 하더군요. 기다리면 정말 원금 회복이 가능하겠냐 재차 묻자 아마 그럴 것이라며 약간 얼버무리더군요. 왠지 미더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자신감 있는 표정, 말투를 보여주더니... 사실 기다리는 것 외에는 별 다른 방법도 없었습니다. 괜히 펀드 투자란 걸 해서 이렇게 피 같은 돈을 손해 보는구나 하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또한 펀드에 눈을 뜨게 만들어 준 재무팀의 대리님까지 미워졌습니다. 그냥 계속해서 예금, 적금이나 하라고 하지...
1년의 시간에 더해 답답하고 미칠 것만 같은 1년이란 시간이 또다시 흘렀고, 저는 2년 만에 투자했던 펀드를 해지했습니다. 결과부터 말씀드리자면, 최종 수익률은 20%(!)였습니다. 투자기간이 2년이니 연 10%의 수익을 낸 것이죠.
정말 감격스러웠습니다. 펀드 투자는 손절매가 아닌, 기다리는 게 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고, 또한 여기에 더해 한 가지 더 깨달은 바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펀드가 주가지수에 연동하긴 하지만, 펀드 매니저의 능력에 따라 수익이 더 날 수도, 혹은 못 날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죠.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2년 전 펀드를 매수할 때 주가지수는 약 1,600(예시)이었고, 매도 시의 지수는 약 1,840(예시)이었습니다.
그림 1) 2년 간의 주가지수 추이
만약 주가지수에 따라 움직이는 인덱스 펀드에 투자했더라면, 수익률은 15%([1840-1600]/1600 ×100)였을 겁니다. 하지만 최종 수익률은 20%였죠. 어떻게 5%의 수익이 더 생긴 걸까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제가 투자했던 펀드는 꽤 괜찮은 능력을 가진 펀드 매니저가 운영하던 펀드였습니다. 펀드 매니저의 진짜 능력은 주가가 올라가는 시장에서가 아닌, 주가가 크게 하락하는 상황에서 발휘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가가 하락하는 상황에서 펀드 매니저는 펀드에 보유하고 있던 종목 중 경기에 민감한 즉, 주가가 많이 떨어지는 종목을 재빨리 매도하고, 경기에 덜 민감한 경기 방어주 위주로 매수함으로써 종목 구성을 바꿔 놓습니다. 그렇게 하면 주가지수가 떨어지는 폭보다 펀드의 하락 폭이 작아지는 효과가 생기죠.
그리고 다시 주가가 상승하는 시장이 오면, 그때는 보유하고 있던 경기 방어주를 팔고, 재빨리 보다 상승률이 높은 경기 민감주로 바꿔 놓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주가지수의 상승폭보다 더 높은 수익을 거두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5%의 추가 수익을 거두게 하는 원동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덕분에 저는 20%의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된 거고요.
이해되시죠? 이처럼 펀드 매니저의 능력이 뛰어나야 주가지수를 추종하는 인덱스 펀드보다 +α의 수익을 더 거둘 수 있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펀드를 선택할 때는 반드시 펀드 매니저가 누구인지를 꼭 확인해야 합니다. 절대 은행이나 증권사 직원이 추천하는 펀드에 그냥 가입하시면 안 되고요. 사실 직원들이 추천해 주는 펀드는 고객의 투자성향에 맞춘 펀드라기보다는, 캠페인이 걸려있는 펀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캠페인이 걸려 있다는 것은 다른 펀드보다 판매사에 더 많은 수수료를 안겨준다는 의미라 봐도 무방합니다.
다음 3편에서는 개인 투자자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펀드의 장단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이 글은 핀테크 기업 '레이니스트'의 온라인 매거진 <뱅크샐러드>에 수록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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