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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배동 사모님 Dec 08. 2022

시누이가 8명인 여자


처음 그의 집에 놀러 가는 날이다.

누나들이 많다고 했는데  예쁘게 인사 잘해야지.

부모님은 연세가 많다고 들었는데.

나를 보고 모라고 하실까?

설레는 마음으로 그의 집에 들어갔다.

부모님과 3명의 누나들이 거실에 계셨다.

아주 반갑게 맞아 주신다.

편하게 얘기도 하고 차려주신 음식도 맛있게 먹었다.

(처음 만난 자리라서 아주 편한 자리는 아니었지만

 모 그렇게 불편할 것도 없는.

 너무 어렸고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 생각 없는

 그저 해맑았던 23살 소녀였다)




방문이 열린다.

하나뿐인 남자 동생의 여자 친구

나를 너무 보고 싶어 했던

너무 궁금해했던

비슷한 얼굴의 누나들이 한 명씩 한 명씩 거실로 나온다.

머릿속이 바빠진다.

그저 해맑았던 소녀의 눈이 요동친다.

얘기는 들었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 정말 많구나.

어머 몇 명이지.

1명 2명 3명 4명 5명

아. 8명이구나.

그는 위에 누나가 8명인 아홉째였다.



그렇게 우리는 연애를 하고 25에 결혼을 한다.

(정신이 나갔거나 사랑에 미쳤나 봐.)


지금 과연 이 남자를 만났다면

누나가 8명인 이 남자와 혼할 수 있었을까?

지금은 너무 어려운 질문

하지만 그때는 어렵지 않았다.

고민하지 않았다.

그때 우리는 조건도 돈도 없었던

그저 순수하고 해맑은 영혼들이었다.      




모가 그리도 급했을까.

25.

결혼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했고 정신 못 차리고 헤롱거렸던 시기였다. 매일 야근을 했고 일 배우기도 바빴다.

게다가 회식도 거의 매일 있었다

(MZ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겠지)


그가 결혼을 하자고 한다.

언젠가 결혼을 한다면

이 남자와 해야지 라는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이렇게 갑자기.

얘기가 나오자마자 상견례를 했고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은 나를 걱정했다.

시누이가 8명인 집에 결혼을 한다고?

왜?

너 정말 사랑하는구나


주변의 걱정과는 달리 엄마 아빠는

시누이 8명은 그리 걱정하지 않으셨다.

동생이 아니라 누나들이라서

잘해줄 거라고 하셨다.

긍정의 끝판왕 우리 엄마 아빠.


집도 회사도 서로 멀었다.

특히 서로의 회사는 더 멀었다.

중간지점 (아니 그의 집에 좀 더 가까운)

작은 신혼집을 구했다.

신혼집을 가본 적도 없이 그와 우리 엄마가 구했다.

신혼집 청소는 누나들이 전부 와서 해줬다.

주변에서 결혼 준비하면 많이 싸운다고 하던데

우리는 그럴 일도 없었다.

뚝딱뚝딱 그가 알아서 준비해주었기에

나처럼 쉽게 결혼한 사람도 없을 거다.


그는 어릴 때부터 일찍 결혼해야지 다짐했다고 한다.

부모님 연세도 많으셨고

누나 많은 집 아들이라서

주변에서 너는 커서 결혼하기 힘들 거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급했다.

일단 결혼식은 했고 작은 신혼집도 있었지만

우리는 각자의 부모님 집에서 그대로 살았다.





결혼을 해서도 연애하듯이

주말마다 신혼집에서 우리는 만났다.

월요일 아침에 출근을 하고

다시 금요일 저녁에 우리는 만났다.

참으로 상한 결혼생활이다.

결혼식은 했는데 연애하듯이 만나니

사실 처음 몇 개월은

집에 있는 화장실도 부끄러워서 못 갔다.


누나들은 우렁각시처럼

우리가 없을 때 냉장고에 반찬을 넣어주고 가셨고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집과 신혼집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여덞째 고모 여덞째 고모”

마트에서 고모를 보고 뛰어가며

여덞째 고모를 큰 목소리로 부르는 중학생 내 딸.

주변 사람들 눈이 아주 동그랗게 커진다.

딸이 좋아하는 여덞째 고모가 눈앞에 있다.

옆에는 일곱째 고모도 있다.     

고모들을 너무 좋아하는 내 딸


  “일곱째 고모 안녕하세요”

너무나 당연하게 숫자로 부르는 우리들.

딸에게는 8명의 고모들이 있고

나에게는 8명의 시누이가 있다.

나는 누나가 위로 8명인 아들과 결혼한 여자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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