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부족한 편이지만 나이 많은 여성의 존재가 곳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세상에서 감춰졌던 중, 노년 여성이 미디어에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기쁘다.
유튜브에서 구독 버튼을 눌러놓고도, 구독중인 영상을 매번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거의 빠짐없이 본 채널이 바로 박막례 할머니 채널이다. 이제는 너무 유명해져서 따로 소개할 필요도 없지만, 초창기 '계모임 화장법' 영상을 볼 때부터 팬이 돼버렸다.(할머니 표현으로는 '편')
박막례님의 영상에 달린 수천의 댓글을 보면 10대, 20대 여성들이 더 열광하는 것 같다. 자기들의 할머니가 생각난다는 사람도 있지만, 친구처럼 그를 대하는 20대들도 있다. '막례쓰~'라는 애칭을 불러가면서.
나도 영상을 보면서 할머니라는 단어를 떠올린 적은 없다. 그냥 유튜버, 크리에이터로서, 때론 앞서 살아간 여성으로 '박막례'라는 존재감이 강할 뿐이다.
"염병하네"란 단어를 가장 먼저 떠오르게 하는 박막례님은 화려한 원색의 옷과 화장이 트레이드마크다.
어느 날 옷장에 쌓여있던 검은색 옷이 싫어서 다 버렸다고 한다. 친구들한테도 검은색 좀 그만 입으라고 권했다. 그리고 금반지를 왜 고이 모셔놓냐고, 열 손가락에 다 끼고 다니라고 했다고 한다. 볼터치 화장을 빨갛게 하든 말든 남들이 상관할 바가 아니며 화장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고 말해 열광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아마 이 부분에서 나 말고 여러 사람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지 않았을까. 한국에서 여자로 태어나 여자로 성장하면서 받은 주변의 눈치, 시선, 지적질에 '뭐 어때' 하고 넘기라는 박막례 님!!
내 마음속에 모토가 하나 생겼다. '남은 인생은 막례처럼'
"내 삶은 때로는 불행했고 때로는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래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 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것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최근 배우 김혜자 씨의 백상 예술대상 수상소감이 화제였다. '눈이 부시게' 드라마의 대사를 읊는 순간, 그 소감을 듣던 많은 여배우들이 눈물을 흘렸다. 시상식 관중석에 앉은 젊고 아름다운 여배우들은 그들 자신의 여배우, 김혜자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벅찼으리라.
한국에 김혜자가 있다면 미국엔 메릴 스트립이 있다. 후배 여배우들이 같이 연기하고 싶은 1순위며 메릴을 위해 대본을 쓰고 싶다는 여성 작가들이 줄을 서있다.
메릴 스트립은 최고의 배우 자리에서 영화계 여성의 역할에 대해 항상 목소리를 내왔다.
"2020년까지 업계 성비 불균형을 타파하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겠다"
" 나이 많은 여성(여배우)도 아직 할 말이 많다. 더 많은 여성, 중년 여성의 영화를 만들자"
2018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업계 성폭력에 저항하고 미투 운동에 연대하는 의미로 검은색 의상을 입자고 독려하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거기에 맞는 나이 든 여성의 삶을 정면으로 내세운 영화에 출연했다. 단지 누구의 엄마, 아내가 아니라 '철의 여인' '맘마미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더 포스트' 등 Old girl이 중심이고 권력까지 가진 역할을 해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 '크레이지 대 크레이지' 등을 보면서 같은 세월을 보내온 메릴 스트립은 이제 70세(49년생). 수십 년간 영화계에서 자기 자리를 넓히고 입지를 단단히 굳힌 뒤 후배들에게 '눈물 나는' 롤모델이 돼주고 있다.
아래 영상은 2018년 메릴 스트립이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Cecil B. DeMille 상을 받은 뒤 소감을 말하는 영상이다. 미국에서 스멀스멀 퍼져나가는 소수자, 인종 혐오에 대해 할리우드 배우로서 이를 막아내야 한다는 발언은 배우뿐 아니라 전 세계인들을 감동시켰다.
이들 셀럽이 앞서서 목소리를 낸다면, 뒤에서 나같은 사람도 세상 어느 한 구석에서 끊임없이 내 목소리를 내보기로 다짐해본다. 세상에 중년남성의 목소리는 너무나 많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