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아마추어인 내가 할 말은 아니다만, 연습과 실전은 정비례할까.
연습을 많이 하면 실전에서 원하는 성과를 거두게 될까.
반대로 연습을 게을리하면 실전에서 망할 수 밖에 없을까.
몇 달 만에 10km 달리기 대회에 나갔다. 그동안 이런저런 일들로 평소에 전혀 뛰지 못했다.
다른 운동도 하지 못했다. 새로 시작한 일로 퇴근하면 그저 침대에 드러눕기 바빴다.
운동을 하지 못하고 책상에 앉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허리까지 다시 아팠다.
운동에서 멀어진 시간을 보내다 덜컥 택배가 날아왔다. 몇 달 전에 신청해둔 서울 도심 달리기 대회의 셔츠와 번호표가 온 것이다.
그때 술을 먹고 신청했나. 비몽사몽 지간에 서울 종로 일대 교통을 통제해 달릴 수 있는 기회다 싶어 과감하게 결제해버렸다.
서울시청 광화문 종로 동대문 청계천 이 라인을 마음껏 뛴다는 것만으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만용이 몇 달 뒤 내게 고지서처럼 날아온 것이다.
'어떡하지 당장 이틀 뒤인데 난 이 상태로는 대회에 나갈 수가 없어'.
'그냥 도심 산책한다 생각하고 나가면 되지'.
'아니야 그래도 대회인데 기록 욕심난단 말이야. 또 기록 너무 나쁘면 괜한 스트레스받아'.
이런 마음의 대화를 주고받다가 당일 그냥 나갔다.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운동화 끈을 매고 대회 티셔츠를 입고 합류했다. 준비운동도 제대로 못했다.
달리다가 힘들면 걷고, 가을날 시내를 산책하는 것도 기쁜 일이라 생각했다.
처음 신호가 떨어지고 종각부터 신나게 달렸다.
생각보다 발걸음도 가볍고 익숙한 길이라 거리도 가늠되고 좋았다. 주말이면 자주 걷는 그 길. 영풍문고를 지나 종로3가 탑골공원을 스쳐 광장시장을 끼고 돌았다. 너무 잘 아는 코스라 그런가, 오히려 초반에 오버페이스 했다. 3km구간까지 신나게 달려 시속 5km대를 기록했다.
결국 7km 구간 넘어서는 다리를 질질 끄는 일이 발생했다. 목은 타고 천근만근 내 다리는 더이상 힘을 내지 못하고 땅에 끌리기만 했다.
그래도 9km를 지나면서는 늘 떠올리는 생각에 집중했다. '어쨌든 이 과정은 끝난다, 그리고 이 정도로 죽지 않는다'.
너무 비장한가. 숨이 턱턱 막혀서 주저앉고 싶을 때 이런 세뇌는 꽤 힘을 불어넣는 편이다.
골인지점은 마침 예전 회사 근처다. 밤늦게 술을 먹고 비틀거리며 걷던 그 길. 사람에 염증을 내며 지겨워했던 길. 평일 햇빛도 못보고 사무실에 있다며 개탄했던 삭막한 풍경의 길.
많은 기억이 배여있는 그 길에 서서 마지막으로 온갖 힘을 짜냈다. 기록은 1시간 4분대. 내 개인 신기록이다.
걷자고 생각하고 쉽게 나섰다가 신기록을 세우고 나니 머쓱했다. 이정도 거리의 달리기는 역시 깡으로 하는 것인가.
흡족함과 동시에 없던 욕심이 생겼다. 훈련했으면 1시간 이내 들어왔을 텐데..(과연..?)
새 직장에 출근한 이후 동시에 두가지에 몰두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아니 일을 시작했으니 취미는 끊어야겠다고 여겼다.
한가지도 제대로 못하면서 여러개를 동시에 할 수 있을까. 또는 취미에 시간을 쓰는건 낭비라는 과거의 시각이 나를 지배했다.
살아간다는 것은 일 아니면 취미인가. 취미는 일을 소홀히 하는 사람들을 상징하는 걸까.
이런 이분법적인 생각이 나를 지금까지 이끌어왔다. All or nothing.
이제 조금은 천천히 여유있게 시간을 분배해도 그리 망할 일은 없을텐데.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힘 좀 빼고 일하고 사람 만나고 또 취미활동을 해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을텐데..
일한다는 핑계로 포기하려했던 달리기를 재개해야겠다. 삶은 결국 내가 가진 시간들이다. 그 시간을 보낸 것들의 총합이 삶이다.
다양한 무늬와 색깔을 가진 삶을 만들고 싶다.
우연히 얻어걸린 달리기대회 결과를 놓고 다음 달리기를 위해 몇 가지를 정리해본다.
-익숙한 루트, 가벼운 마음이 편하게 달리게 만들었다.
-마지막 스퍼트는 역시 중요하다.
-물 마시는 시간을 아까워말자. 천천히.마시고 다시 달려도 충분하다.
-초반 페이스는 천천히 하고 호흡이 트인 뒤 종반에서 속도를 높여야 한다.
ps. 끝나고 마시는 커피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