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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로라 마을에서 만난 ‘작별하지 않는다'

by 방혜린 Mar 19. 2025

시드니 근교 블루마운틴 근처에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로라 마을(Leura village)'이 있다.

시드니 근교라고는 하지만 호주가 워낙 땅은 넓고 인구 밀도는 낮아서 시드니에서도 차로 2시간 정도 이동해야만 만날 수 있었다.


‘정원의 마을’이라고도 불리는 이름도 예쁜 로라 마을은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작지만 매력적인 마을이었다. 마을 전체가 아담하고 이름에 걸맞게 따뜻한 정원에 금발머리 로라아가씨가 뛰어놀것만 같은 인상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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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블루마운틴 시의회에서 엄격한 규정 하에 마을 내의 모든 개발을 관리하고 건물의 색깔까지도 계획적으로 진행한다고 했다. 마을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널리 전해져 이 작은 마을이 멀리 한국까지 입소문이 나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관광을 오게 한다는 생각을 하였다.

    

블루마운틴의 유칼립투스가 내뿜는 피톤치드로 푸른 공기를 듬뿍 마실 수 있는 로라마을은 예로부터 블루마운틴 탄광에서 광부로 일하던 사람들이 은퇴 이후 살고 싶어 하는 마을이었다고 한다.

폐병을 치유하고 건강을 유지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환경의 한적한 마을이었다.

시드니 시내와 비교적 가까워서 출퇴근이 용이하고 고급 주택들이 많아 지금까지도 은퇴한 노인들이 많이 살고 싶어 하는 마을이다.  

   

나는 이 예쁘고 평화로운 마을을 거니는 것만으로도 힐링일 거란 기대로, 딸아이는 젤라또를 맛보고 캔디스토어를 가보고 싶어 했고, 아들은 로라마을의 K-버거를 꼭 먹겠다는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이곳을 방문했다.

남편은 무엇을 기대하고 왔을까? 딱히 궁금하지 않아 묻지 않았었는데 쓰면서 갑자기 궁금해졌다. 영혼 없이 따라다닌 듯도 하고…….


K-버거는 코리안버거가 아닌 캥거루 고기버거이다. 이곳에 오기 바로 직전 시드니 동물원에서 캥거루를 만나고 그 수정 같은 눈을 맞추고 교감이란 걸 했는데 꼭 캥거루 고기로 만든 버거까지 먹어야겠냐는 나와 딸의 맹비난에 아들의 K-버거를 맛보겠다는 의지는 좌절되고 말았다. 다행히도 K-버거를 먹어본 사람들의 말로는 누린내가 나는 고기의 맛이라 별로 추천하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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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서 봄을 맞이하고 있는 우리나라와는 반대로 여름의 끝자락인 호주는 이제 선선해질 때가 되었는데도 지구 온난화의 이상기후로 한 여름처럼 아직 더웠다.

더위를 시키려 한적하게 산책하듯 걷다가 만난 젤라또 상점 'Josophan’s FINE CHOCOLATES'에서 가족 모두 젤라또콘 하나씩 물어주었다.

금세 입 안 가득 쫀쫀한 질감의 시원한 아이스크림이 기분 좋은 정도의 단맛으로 온몸 세포의 하나하나까지 행복에너지를 가득 충전해 주는 느낌이었다. 기본적으로 호주의 음식이나 먹거리들이 자극적이지 않아서 개인적으론 무척이나 좋았다. 젤라또 역시 심심한 듯 은은하게 입안에 퍼지는 맛이 좋았다. 나중에 들으니 이곳이 우리나라에 블랙핑크 제니가 다녀가 유명해진 곳이라고 하는데 제니가 아니고 누가 와도 이 맛은 인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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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근처카페에서 아이스롱블랙 한잔을 사서 젤라또 한 입 아메리카노 한 모금의 조합으로 즐겼다.

블루마운틴의 대자연 자락에서 단짠단짠의 조합이 아닌 단쓴단쓴의 조합으로 잠시나마 눈과 입이 호강을 누렸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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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는 곳곳에 앵무새가 우리나라의 비둘기만큼이나 많았다. 젤라또 상점 앞에도 마스코트처럼 하얀 앵무새가 앉아있었는데 사람들이 다가가든 지나가든 아랑곳하지 않고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떨어진 아이스크림 콘 부스러기를 쪼아 먹으려는 모양이다. 우리나라의 동물원에나 가면 볼 수 있을법한 앵무새가 어디에나 흔히 보이니 나라 전체가 동물원 같기도 하다. 조류공포까지는 아니지만 조류를 무서워하는 우리 가족은 내내 긴장하며 다닌 터라 승모근이 2cm는 높아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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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마을을 거닐다가 아들이 발견한 작은 독립서점 ‘Megalong Books’는 입구부터 로열블루색으로 그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아들과 나는 반가운 마음에 주저 없이 서점으로 들어갔다.

규모는 작지만 책이 빼곡히 꽂아져 있었고 역시나 아기자기 볼거리가 다양하게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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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을 구경하며 들었던 생각은 외국 서적들의 표지 디자인이나 색상은 우리나라에 비해 과감하고 다채롭다. 꽂힌 책을 보는 것만으로도 오브제 같은 모습이었다. 하루 종일 이곳에서 책 표지구경만 하라고 해도 지루할 틈이 없을 정도로 눈이 즐거웠다. 나무로 지어진 서점 내부에 짙은 브라운색 마룻바닥은 왁싱이 잘 되어 있어 반짝반짝 거렸고 오래되었지만 고풍스런 카페트가 잘 어우러지게 깔려있었다. 그곳 한편에 쭈그리고 앉아 시간의 제약 없이 책 읽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호주의 로라마을에서 자발적 불법체류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었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과연 이곳에 우리나라의 책이 있을까?

호기심이 발동해서 혼자 이곳저곳 둘러보며 찾아보았다. 규모가 작은 서점이지만 책들이 꽤나 빼곡히 꽂아져 있고 한글도 아니니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계산대에 앉아있는 젊은 여직원에게 물어보았다.

“너네 혹시 한국 책 있니? “ 직원은 아쉽게도 ‘only one’ 딱 한 명 한국작가의 책이 있다고 이야기하며 친절하게 책이 있는 곳까지 직접 안내해 주었다.

정말 궁금했다.

이 먼 나라의 이 높은 곳 이 작은 마을에 이 작은 독립서점에 있는 한국 작가의 책이 무엇일까?

브런치 글 이미지 13

그 책은 바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 (We do not part)가 당당히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외 서너권 한강작가의 책이 꽂혀있었다. 외국에 나가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더니 단전에서부터 국뽕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멀리 외국에 사는 오랫동안 못 만난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웠다.

직원은 한강작가의 노벨상 수상한 후 표지가 리뉴얼되었다고 설명도 해 주었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지 않았다면 이 책이 여기에 자리하고 있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이곳엔 단 한 권의 한국작가의 책도 없었을까?


직원에게 이 책들이 여기에서 많이 팔리는지 인기가 있는지 물으니 역시나 노벨상 수상 이후 문의가 종종 있고 판매도 많아졌다고 한다. 직원에게 책을 읽어봤냐고 물으니 아직 못 읽어봤다고 수줍게 웃으며 얘기한다. 젊은 직원은 나에게 사실 거기 사람들이 한국의 다른 책에도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긴 한데 번역된 책이 많지 않아 아쉽다고도 했다.


‘너도 아쉬운데 나는 얼마나 아쉽겠니?‘ 속으로 생각하며 잠시 내가 멋진 책을 써서 번역본을 들고 이 젊은 직원에게 선물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도 해보았다. 아무도 모르게 버킷리스트 하나 더 추가하고 우리나라의 다른 작가님들의 책이 더 많이 번역되어 전 세계 곳곳으로 닿지 않는 곳이 없게 진출하기를 기원하였다.     


내가 알게 모르게 스쳐 지나간 모든 것들조차 우연이 아닌 운명이었을까? 호주여행을 계획하기 전까지는 호주의 뉴사우스웨일스 주 블루마운틴 시 로라마을이 어디에 붙어있는지 존재조차도 알지 못했다. 살면서 이곳 로라마을에 다시 올 확률이 얼마나 될까? 지구상에 있는 수많은 여행지 중에서 호주의 작은 마을에 잠시 머물러 다녀 갈 수 있는 것도 우연히 발견한 서점에서 한국작가의 책을 만난 것도 우연이 아닌 어떤 이끌림에 의해 정확히 계산된 운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중에 마주치는 작은 순간들이 결국은 다 의미 있는 경험으로 남는다는 게 행복하다. 이것이 여행에 묘미가 아닐까도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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