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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미진 Mijin Baek Jan 04. 2021

연말과 연초에 다들 하는 목표 설정에 관하여,

템플릿 나눠주고 써라~ 하면 다들 써야지 이걸 왜 못써?

지난달에 이틀 동안 파트 목표 설정 워크숍을 진행했다.

기존에 하던 플랫폼 협업 도구 운영 업무와 내가 들어와서 앞으로 새로 시작할 코칭 업무, 이렇게 두 가지 업무가 공존하는 곳이라 하루 8시간씩 이틀을 꼬박 진행했다.

그 결과물은 OKR 포맷에 담긴 파트의 목표였다. 이제 이걸 바탕으로 개인의 목표를 만드는 순서를 거치면 비로소 조직의 목표 설정과 개인의 목표 설정까지 끝이다.


목표 설정 워크숍을 진행하며 의도한 건 이런 것들,

1. 목표 설정 워크숍 설계는 내가 했지만

2. 파트 내부에서 진행하면서 보완하는 과정을 거쳤고

3. 우리의 목표를 만드는 과정을 함께 해보면서 결과물로 목표와 OKR이 만들어졌고

4. 워크숍 진행 순서에 따라 나눈 이야기와 결과로 나온 산출물로 인해 공통된 이해가 생겼다

5. 코치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들은 실무에 OKR 포맷을 제공하는 것보다 그걸 만들어 내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걸 몸소 체험했고

6. 이 과정을 거치면서 함께 디벨롭한 거라 이다음에 워크숍을 진행할 수 있을게다

7. 우리에겐 목표 설정 워크숍 포맷 한벌이 생겼으며

8. 만들어낸 과정과 결과물은 그대로 사례로 누적되어 사내에 공유할 게다.  








일반적으로 연말이 되면 다음 해에 우리 조직에서 무엇을 할 건지 목표를 수립하는 일을 한다.

십수 년 회사 다니면서 한 번도 안 했던 적이 없다. 연말, 연초에 잡는 계획은 대기업일수록 더 꼬장꼬장하다. 내년도 예산을 잡아야 하고, 예산이 어디로 들어갈 건지를 계획해야 하는데, 거기에 엮여 있는 중간관리자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항상 스태프 부서에서 템플릿을 만들고는 작성해 오라며 팀 별로 갈라붙인다.

한번 적어낸 계획은 절대로 바꿀 수 없다.  


지금은 장돌뱅이 코치 생활 십 년쯤 됐으니 그게 왜, 어디가 잘못됐는지 짚고 올바른 방향으로 고쳐갈 수 있지만 더 어릴 적엔 그 광경이 참 이상했다.


아니 뭘 주고 써오라고 하든가...

그리고 계획은 안 해본 일이니까 세우는 거지, 안 해본 걸 하다 보면 바뀌는 게 당연한 건데 왜 고치지 말라는 거야.


---


지금껏 내가 있던 회사는 수만의 직원이 있는 곳이었다.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이 백 명이 넘어가는 조직만 봐도 부서가 갈라져있다.

그냥 얼핏 생각해 봐도, 회사 전체 차원에서 달성하려는 목표/비전이 있으니 각자의 역할과 할 일에 따라 그렇게 부서를 쪼개 놓았을 게 아닌가?

그렇다면 개인인 내가 목표를 세울 때 내 역할이 뭐고, 내가 할 일이 뭔지, 그 일을 해서 우리가 뭘 달성하려는지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자, 그래서 다들 자신의 회사의 비전과 목표가 뭔지 다 알고 계십니까?








목표라는 게 "언제까지 써와라" 명령하면 뚝딱 만들어지는 거라고들 생각하는 모양이다.

조직에서의 목표와 비전은 조직을 이루는 구성원 모두가 보고 달릴 수 있는 북극성 같은 것이다.

그런 걸 누군가 한 명이, 모니터에 템플릿 켜놓고 명사와 형용사를 그럴듯하게 끼워서 만들어낸다고 해서 목표가 생긴 게 아니라는 의미이고, 그걸 보고 구성원 모두가 "아 이게 우리가 달성해야 할 목표구나?!!!" 하고 단번에 알아채서 같은 방향으로 달릴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같은 편이면 어디로 달릴지 계획을 같이 짜든가,
이미 정해졌으면 나한테 동선이라도 알려줘야 할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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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광경 아닌가? 내가 직접 찍은 사진.

스페인 본토에서 좀 떨어진 테네리페 섬의 꽤 좋은 호텔에서 찍은 사진이다. (윤식당 나왔던 동네)


이 사진을 다른 사람들이 보면 아무 감흥이 없을 테지만, 나와 내 남편은 이걸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코로나가 터지기 직전에 신혼여행 가서 찍은 사진인데, 저 섬 자체가 여행을 떠나던 날부터 여행 중반까지도 계획에 없던 곳이기 때문이다. 왜냐면 계획을 안 하고 갔ㅋ거ㅋ든ㅋㅋ

포르투갈로 들어가서 스페인으로 나오는 걸로 비행기 티켓은 내가 예약하고 남편이 숙소와 차편을 알아보기로 했었다. 근데 포르투갈에서 나오기 이틀 전까지도 안 알아본 남편... 나는 급하게 뭘 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함. 그래서 분위기가 냉랭해졌는데, 한국으로 들어오는 곳이 말라가 공항이어서 리스본에서 말라가까지 중간에 다른 도시를 거치며 차로 이동을 할지 비행기로 한 번에 갈지 알아보기 시작했었다. 한데 차로 가면 너무 힘들 것 같아서 비행기를 타기로 했음.

말라가랑 가까운 곳에 있는 공항이 어디인지, 리스본에서 갈 수 있는 공항을 지도에서 하나씩 살펴보던 중에 우연히 테네리페 섬으로 가는 비행기가 있다는 걸 알았다. 구글맵으로 사진들을 찾아보니까 너무 아름답지 뭡니까? 그래서 결정. 우리는 테네리페 섬으로 간다 ㅋㅋㅋㅋㅋㅋ

신혼여행을 2주 정도 꽤 길게 갔는데, 네 군데 도시에서 머물렀더랬다. 그중 가장 좋았던 곳이 테네리페.


이 사람은 왜 저 사진에 얽힌 이야기를 구구절절하는 걸까... 당연히 궁금할 게다.(궁금하라고 한 것임)

던져준 포맷에 작성한 내용은 이 사진과 같기 때문이다.

목표를 만드는 데 함께 했던 사람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사진 속에 무수히 들어있다.  


그리고 그게 바로 목표 설정을 '워크숍'으로 진행하는 이유이다.  


목표를 문장으로 만드는 과정을 조직장이 혼자 모니터를 보고 할게 아니라,  

구성원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발산하고 정리하고 정제해서 만들어야 한다. (발산과 수렴)


워크숍이라는 행위를 통해 조직원 모두가 함께 일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 일감의 맥락과 목적을 듣고, 궁극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기 위해 그런 일감을 지금 하는 건지에 대해 나눠야 한다.


이로써 구성원 각각은 내가 하는 이 일이 내 제품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 이해할 수 있고, 그 기여가 조직과 회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해 고민해 볼 수 있다. 최근까지도 핫한 OKR이 바로 그런 걸 추구하는 것이고.


이러한 전체 과정을 함께 한 후에 결국엔 위키 페이지에 문장으로 정리된 목표가 남겠지만,

그 문장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그걸 도출하는 과정을 함께 하며 나눴던 이야기가 머릿속에 남아있기 때문에 일의 출발선과, 골인 지점에 대해서도 이해가 같은 상태로 진행할 수 있다.


바로 저 사진처럼.








구성원들과 목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흔히 "위에서 내려주길 기대하는" 광경을 많이 본다.

내가 이틀간 목표 설정 워크숍을 했다고 하니 이전 회사 조직장에게 메시지가 왔다.

"우리도 와서 해줘 ㅠㅠ"


내가 그 조직에 있을 때 여러 번 시도했었는데 잘 안 됐다.

이유는 얼라인 때문이었는데, 조직 차원의 상위 목표가 있어야 그 조직을 구성하고 있는 개인도 목표를 세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내가 짚었던 그 조직의 문제는 상위 목표가 없어서 뿐만은 아니었다.

조직을 구성하는 개인들이 그 조직에서 성취하고 싶은 도전적인 목표도 딱히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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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우스 컨설턴트이면서 코치이기 때문에 다양한 제품/다양한 조직/여러 회사에서 top-down과 bottom-up으로도 조직을 변화시켜 본 경험이 모두 있는데, 목표 설정하는 방법도 두 가지 다 가능하다. 현존하는 조직에서 목표가 완전히 부재한 곳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다만 아무도 그게 뭔지 알아보려고 하지 않을 뿐.

이 조직만이 할 수 있는 일 하나만 끄집어내도 가능하다.


목표라는 건, 조직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와도 같다.

나는 직장인이지만 한 번도 내가 을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만 해줄 수 있는 일이니까 날 뽑았을 거 아닌가? 그러니 구성원이라도 이 조직에 내가 있어야 할 이유, 우리가 팀으로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목표 설정은 양쪽의 합이 맞았을 때 최상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누군가는 목표를 쓰려고 작년에 적어놨던 위키 페이지나, 구글 시트, ppt 등을 펼쳐보고 있을게다.  

그리고 혼자 문장을 이렇게 바꿨다, 저렇게 바꿨다 하면서 그럴 듯 한 문장을 만들어 내겠지..


중요한 건 템플릿이나 도구가 아니라 그걸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나눈 이야기에 담겨있다는 걸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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