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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호 Oct 24. 2021

모태솔로들의 소개팅을 위하여

 “Manners maketh man.” 영화 <킹스맨>속 헤리(콜린퍼스 분)의 대사는 한때 모르는 이가 없는 유행어였다. 멋들어지게 슈트를 차려입은 신사가 악당들을 응징하기 전 읊었던 이 말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왔고 명언으로 자리 잡았다. 매너가 사라진 시대에 대한 역설이자, 짜증과 화가 팽배한 현실 그리고 가감 없이 자신의 기분을 드러내는 세대에 대한 방증일까?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파스칼이 말했던가. 갈대는 예상치 않은 작은 변화에 흔들린다. 그리고 그 변화는 판단과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타인과의 대화와 공감(共感)이 힘든 이유다. 사람들은 타인이 무엇을 말하기도 전에 외모와 목소리만으로 태도를 형성한다. 그리고 그 태도를 바꾸는 데는 예상하기 힘든 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원빈이나 현빈과 같은 출중한 외모에 이병헌, 이선균의 감미로운 목소리면 세상 모든 일이 수월할까? 적어도 관계의 시작에선 그럴 것이다.

 첫 만남에서 주는 인상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순간이 있다. 바로 소개팅이라 부르는 남녀의 만남 자리다. 돌아보면 어디에 가서 무엇을 먹을 것인지, 어떤 이야기를 나눌 것인지 등의 주도적 역할이 암묵적으로 남성에게 주어진 우리 사회에서 소개팅은 설렘이자 두려움이 공존하는 카이로스kairos의 순간이었다. 원빈의 외모도 이병헌의 목소리도 갖지 못한 내가, 심지어 더 이상 젊지도 않고 도와줄 반려견도 없었던 내가 활용한 팁이 있다.


 첫째, 벽을 등지고 앉아라. 사람들이 벽에 붙은 자리를 좋아하는 것은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 때문이다. 수렵과 채집을 하던 시대의 인류는 맹수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또는 먹을 것을 남들보다 빨리 찾기 위해 최대한 시야를 확보해야 했다. 현대인들의 퇴화한 시력은 그 반증이다. 건물의 밀집도가 높은 홍콩인들의 평균 시력이 가장 낮고, 유목생활을 하며 가축과 이들을 노리는 들짐승을 살펴야 하는 몽골인의 평균 시력은 최대 4.0에 이른다. 인간에게 가장 취약한 공간은 등 뒤 일수밖에 없고, 등 뒤에 벽이 있다면 자연스레 심리적 안정으로 이어진다.

 그럼 왜 상대에게 잘 보이려 노력해도 시원찮은 상황에 좋은 자리를 선점하라는 것인가? 인간의 시야는 한정적이어서 한눈에 들어오는 범위는 45도 이내다. 때문에 축구 골키퍼들도 정면에서 상대 선수가 차는 프리킥보다 45도 측면에서의 프리킥이 더 막기 어렵다. 그런데 시각이라는 것이 거리와의 연관성도 있어서 가까울수록 좁아진다. 벽을 등지고 앉아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오로지 당신에게만 집중하게 만들라는 뜻이다.

 주의 집중은 불필요한 자극에 대한 반응은 억제하고 특정한 자극에 집중해 반응 하는 일련의 정신적 과정으로 선택적이라는 부분에 주목해야 한다. 그녀는 당신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눈치인데, 당신은 첫눈에 반했다고 생각해 보자. 상대가 당신의 이야기를 선택해 집중해야할 무언가로 인지하지 않는다면 외부 자극에 눈을 돌리거나 귀를 기울일 가능성이 높다. 외부 자극이 불필요하고 부정적이라는 인식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리한 상황도 생각해 보자. 상대는 당신에게 혹은 당신이 제시하는 무엇인가에 관심이 있다. 그것이 호기심이든 호감이든 긍정적 상태 정서라면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릴 수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당신에게 주어진 시각과 시간을 확실히 확보해야 한다. 멋진 이성이 대화 내내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상상해 보라. 심지어 여성들은 멋진 이성뿐 아니라 아름다운 동성과 평소 눈 여겨 봤던 옷이나 가방에도 시선을 준다. 의문의 1패를 안고 게임을 시작해 경기 내내 고전할 가능성이 높다.


 둘째, 조명 앞에 앉아라. 인간의 오감 중 빛, 소리, 냄새 등의 요소들은 지각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분을 좌우하는 것을 넘어 판단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이중 시각은 공간의 ‘빛’에 의해 형성되고 인지된다. 실내나 해가 진 후 빛의 역할을 하는 것이 조명이다. 조명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밝고 어둡다거나 잘 보이는지 여부 등 물리적 생리적 측면과 예쁘거나 편안한지 등 심리적 감정적 측면이다.

 할로이펙트halo effect는 말 그대로 등 뒤에서 비치는 빛으로, 앞 쪽에 그림자를 만들어 사물의 윤곽을 밝게 한다. 일상에선 심리학 용어로 더 많이 쓰인다. 우리는 흔히 부분적인 속성에서 받은 인상으로 전체를 평가 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과 다르게 과대 또는 과소평가하는 오류로 이어지는데, 전형적인 예가 한 사람의 외모가 주는 영향력이 그 사람의 다른 면을 압도하는 경우다. 좋은 동네에 살고 명문대를 나왔거나 대기업에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타인에 비해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착각 등도 마찬가지다.


 셋째, 음악은 이용하고 소음은 피해라. 나는 카페에 가면 테이블 간 간격을 살핀다. 대화에 심각한 노이즈noise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는 물리적 거리로만 해결할 수 없고 해당 공간의 소음이나 음악소리가 적절히 어우러져야 한다. 음악이 지배한 공간에선 목소리를 크게 내야하니 힘들고, 높은 목소리 톤tone은 서로가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음악 자체에 빠져들어 감정의 동요를 가져오는 것 또한 집중을 방해한다. 헤어진 연인과 들었던 음악이라며 눈물을 훔치는 황당한 모습을 다시는 보고 싶진 않다.

 선택의 순간에는 음악 자체도 변수가 된다. 친숙한 배경음악이 나오는 매장에서 구매시간을 길게 이어가는 고객이 많으며, 채소가게에선 불필요하게 큰 음악 소리가 매장에서 머무는 시간을 짧게 했다. 국내 백화점에서도 가장 붐비는 점심시간과 오후 4~5시에는 차분한 음악을 틀었을 때 매출이 증가했고, 대형 슈퍼마켓들도 음악의 템포를 시간대 별로 달리하고 있다. 홈쇼핑에선 방송 배경음악에 따라 매출 효과가 다르다는 결과를 속속 내놓고 이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조명을 등지고 앉아 적절한 음악이 분위기를 달아오르게 했다면 이제 스테이크를 주문하라. 그리고 후식으로는 초콜릿이 듬뿍 올라간 달달함을 선택하고, 다음 약속은 공포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나 하늘까지 밀어 올려 줄 놀이공원을 적극 제안하라. 음식의 특정성분이 상대의 기분을 풀어줄 것이며, 인위적인 공포를 공유하며 상대는 당신에 대해 동질감과 믿음을 느낄 것이다. 상대의 기분에 집중해 긍정적 정서적로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데 성공했다면 이제 본격적 관계의 기초는 다진 셈이다. 정서의 변화는 결국 태도를 형성하고, 그 태도는 지속적으로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당신은 선택받지 못했는가? 그렇다면 이어질 이야기에 집중해야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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