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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호 Oct 24. 2021

Hello, Stranger!

 내가 한창 ‘스피치란 무엇인가’를 핏대 세워 강의하던 때가 2010년을 전후했을 때다. 그때는 당연히 몰랐다. 내 앞의 풋풋한 애송이들이 MZ세대라는 것을 말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의 그들이 어떻게 하면 지루하지 않게 수업에 집중하게 할까 하는 고민의 연장엔 늘 신선한 예를 들어 설명하기가 포함되었다. 아나운서를 준비하던 학생들이 주를 이루다 보니 대학생이거나 사회생활 초년병이 대부분이었다. 자연스레 이성과 연애에 대한 관심이 많을 때였고 그런 호기심을 자극할 이야기를 고민하곤 했다. 그중 최근에 와선 사람들 사이에 구전돼 한 번쯤 들어 봤을 나름의 유행어가 있다. 남자들 눈에 가장 예뻐 보이는 여자는 누군지 아는가? 바로 ‘처음 보는 여자’다. 남성의 심리와 특성을 잘 반영해 당시 반응이 좋았다. 물론 이제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아는 이야기라 식상할지 모른다. 인간의 본능은 익숙함을 ‘식상함’ 또는 ‘지루함’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처음 접하는 것에 대한 ‘낯 설음’은 모든 인간이 선호하는 감정이다. 또한 예상치 못한 일이나 새로운 것에 환호하는 인간의 심리로 볼 때 새로움과 낯섦은 같은 의미가 된다.


 돌아보면 군에서의 2년 반은 마치 10년 같았다. 그런데 내가 아나운서라는 타이틀을 훈장처럼 받은 지 벌써 20년을 향해 가고 있음을 인지할 때마다 다시 군복이 입고 싶어 진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이 느끼는 공통적 의문점 중 하나는 물리적 시간의 흐름은 변함이 없는데 왜 체감하는 시간의 속도가 다른가 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점점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나이 체감의 법칙’이라고 표현 한다. 체감하는 1년의 시간은 개인 나이에 비례해 짧아진다. 10대에게 1년이란 살아온 전체 인생의 1/10에 불과하다. 그러나 40대에게 1년이란 시간은 40년 중에 1년이 되니 1/40이 된다. 마찬가지로 60대의 1년이란 시간은 1/60이 되니, 그 체감의 시간이 얼마나 짧겠는가? 그러나 나이 체감 법칙의 이면에는 익숙함이 반복돼 느끼는 지루함이라는 안타까운 이유가 자리한다.

 인생에서 중요 이벤트는 대부분 20대 초반에서 40대 중반에 집중되어 있다. 의무교육과 대학 졸업이 필수인 한국 사회에서 모든 이에게 가장 큰 첫 이벤트는 대학입시다. 남자들의 첫 중요 사건은 단연 군 복무다. 첫 직장을 잡고 연애에 이어 결혼을 해 아이를 낳아 키우며 자신의 가정을 새로 꾸려가는 시기가 이때이다. 이후의 삶에서 자녀들이 결혼해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고, 슬프게도 자신의 부모님과는 죽음으로 이별을 맞게 될 것이다. 실제로 노인들에게 지난 삶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물었을 때도 20년 남짓의 이 시간에 있었던 일들을 가장 많이 꼽았다. 심리학에선 이를 ‘회고 절정(reminiscence bump)’이라 말한다.

 “아빠도 태어날 때부터 아빠가 아니잖아.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니까 우리 딸이 좀 봐줘”

 전 국민을 레트로(과거의 기억을 그리워하면서 그 시절로 돌아가려는 흐름) 열풍에 빠지게 했던 <응답하라 1988>에서 배우 성동일이 딸에게 한 말이다. 또 영화 <미나리>를 통해 미국과 영국의 아카데미를 비롯해 수많은 영화제에서 조연상을 휩쓸며 또 하나의 살아 있는 전설이 된 배우 윤여정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일은 처음 겪는 일이다. 나도 67세가 처음이야!”

 개인의 삶에서 ‘처음’ 접하는 이벤트의 시간은 대부분 젊은 나이에 집중돼 있고, 이후 중장년과 노년으로 이어지는 시간은 말 그대로 새로울 것 없는 일상의 반복이다. 회고 절정은 인간이 낯선 것에 목말라한다는 충분한 근거를 제시한다. 우리는 배우 윤여정 씨처럼 나이가 들어서도 영화나 방송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거나 새로운 인생을 살아 볼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굳이 돈을 내고 줄을 서면서 까지 놀이기구를 타야 해?”

 연애 초기에 어김없이 놀이동산을 가자는 그녀들을 보며 든 생각이었다. 그런데 번지점프나 패러글라이딩에 심지어 스카이다이빙이라니. 내가 O양과 미래를 함께 하지 못했음은 어찌 보면 결과론으론 다행이다. 어느 해인가 부모님과 함께 남이섬을 찾아 주차장에서 올려다본 까마득한 번지점프대는 내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게 만들었다.

 번지점프를 하는 사람들은 이를 새로운 도전이라 인식한다. 튼튼한 끈으로 묶여 안전하다는 것을 알지만 맨몸으로 수십 미터 높이에서 스스로 뛰어내린다는 것은 죽음의 공포마저 느끼게 한다. 실제로 이런 극단적 도전은 물리적 시간의 법칙마저 거스른다. 《창조하는 뇌》의 저자 데이비드 이글먼David Eagleman은 실험을 통해 이를 입증했다. 지원자들을 모아 49미터 높이에서 그물망 위로 뛰어내리게 하고, 이후 낙하하는 시간을 어느 정도로 느꼈는지 물었다. 그들의 대답은 실제 낙하시간의 평균보다 36퍼센트 길었다. 일상에서 크게 벗어나 낯선 경험을 하는 순간, 심지어 극심한 공포를 느끼며 낙하하는 시간을 훨씬 길게 체감한 것이다. 죽음의 위기에서 극적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흔히 5분을 몇 시간 같았다고 회상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전 인류를 통틀어 가장 극적인 ‘낯 설음’의 시간을 경험한 사람이 있다. 그는 바로 《죄와 벌》을 남긴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Dostoevskii다. 어린 나이에 러시아 평단의 주목을 받은 그는 사회주의 경향의 모임에 가담해 당시 러시아 정치체제를 비판했다. 이에 황제인 니콜라이 1세는 도스토예프스키를 포함 33명을 체포해 사형을 선고한다. 그러나 마치 영화처럼 사형 집행 직전에 황제의 사면으로 유배가 결정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극적으로 삶을 이어간다. 시베리아에서 보낸 4년여의 고된 수용소 생활 속에도 그는 덤으로 얻은 삶의 소중함을 되새기며 머릿속으로 수없는 작품들을 써나갔다. 그리고 다시 세상으로 나온 후 《백치》라는 장편소설을 통해 이런 구절을 남겼다.

 "나에게 마지막 5분이 주어진다면, 2분은 동지들과 작별을 고하는데, 2분은 짧은 삶을 되돌아보는데, 그리고 남은 1분은 세상을 바라보는 데 사용하겠다. 언제나 이 세상에서 숨을 쉴 수 있는 시간은 단 5분뿐이다.”


 남자들이 놀이기구를 여성들보다 못 타는 데는 이유가 있다. 평균적으로 남성의 위치감각이 여성보다 더 발달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운전에 강점을 가지거나 내비게이션 없이도 목적지를 더 잘 찾는다. 반면 여성들은 위치감각이 다소 무뎌 길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이는 같은 놀이기구를 타도 남성보다 무서움을 덜 느낀다는 나름 과학적 변명으로 자연스레 연결할 수 있다. 그렇다. 앞선 이야기는 나처럼 ‘쫄보’로 보이고 싶지 않은 남자들의 비겁한 변명이다. 도스토예프스키처럼 극단의 낯 선 시간을 겪지 않음은 다행이지만, 두려움을 이기고 번지점프대에 올랐어야 했을까? 그랬다면 지금 내 옆에는 여전히 O양이 함께였을까.

 도전은 두려움의 또 다른 이름이다. 당신이 새롭지 못한 것은, 어린 날처럼 매일매일 생기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단지 회고절정의 시기를 지나 새로울 것 없는 반복되는 일상 때문이 아니다. 기꺼이 낯선 것을 받아들이려는 의지, 두려움을 마주할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눈앞에 닥친 해야 할 일들만 하고선, 정작 남은 삶에서 누릴 수많은 가능성들은 놓치고 사는 게 아닐까? 우물쭈물하다 내가 놓쳐버린 O양처럼 말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극적으로 사형집행이 정지되고 이후 인생을 더 밀도 있게 살며 수많은 명작을 남겼다. 죽음의 문턱을 돌아 나온 난치병 환자가 아니더라도, 맘 하나 달리해 나도 그럴 수 있을까. 당신은 어떤가? 세상살이가 더 이상 새로울 것 없어 지루한가? 그래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 창의성마저 잃었는가? 그럼 이 말을 항상 기억하자.


 “언제나 인생은 5분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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