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연

단어에 꽂혀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에세이

by 반년작가



“사람들은 왜 등산할 때 꼭 정상을 정복하려는지 모르겠어. 산을 오르는 동안에 만나는 나무들도 좋고 졸졸 흐르는 계곡물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좋은데, 난 정상에 오를 필요성을 굳이 못 느끼겠어.”




나를 오르는 동안 나름의 그 풍경들을 충분히 즐긴 듯한 그는 이제는 내려갈 채비를 했다. 누군가에게는 아름답고 즐거웠던 산행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나를 맘껏 오르도록 그를 허락해준 적이 없었다. 멋대로 나를 오르더니 느닷없이 잔뜩 들여다보고는 홀연 하산했다. 무단 침입에 가까운 불청객의 발자취가 내게 남아버린 것이 썩 달갑지 않고 불쾌했다. 그리고 그에게 나는 굳이 정복하고 싶지 않은 산이었다는 걸 억지로 꾸역꾸역 받아들여야만 했다.



홀연, ‘뜻하지 아니하게 갑작스럽다’라는 말이다. 언제나 홀연했던 내 사랑은 느닷없이 나타나서 눈 깜짝할 사이에 금세 사라져 버리곤 해서, 번번이 홀로 남겨진 그 나머지 시간을 꿋꿋이 혼자 견뎌내야만 했다.








오늘의 단어
「홀연(忽然)」
: 뜻하지 아니하게 갑자기.

- 출처 : 국립국어원《표준국어대사전》 -


[날것? 날것!] : 단어에 꽂혀 이야기를 풀어내는 에세이

'[날것? 날것!] : 단어에 꽂혀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에세이'의 제목은 날것 그대로의 솔직한 글을 뜻하는 ‘날것’과 날개가 돋친 듯 승승장구 높이 날고 싶다는 염원을 담아 본 ‘날것’, 한 단어가 가진 중의적인 의미에 꽂혀 재치 있게 표현해보았습니다. 주로 특정 단어나 단어가 가진 뜻에 꽂혀 보통의 일상 이야기를 풀어내는 걸 좋아합니다. 현상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첫 순간에 느껴지는 날것 그대로를 기록하기 위해 노력하며 ‘날것?’으로 도약하여 ‘날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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