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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봄일춘 Oct 22. 2021

나는 새 아내와 산다


윤선이 아토피가 더 심해져서 내일 병원을 데리고 가봐야 할 거 같아윤찬이는 이번 주 금요일에 태권도 3품 심사한다고 하는데벌써부터 긴장되나 봐. 다음 주 아버님 생신 어떻게 할까?......”



“여보세요?”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아내 목소리. 이상하다. 분명 엄마한테 전화를 했는데.  “미안, 전화 잘 못 걸었나 봐. 엄마한테 한다는 게.” 아내는 내 얘길 다 듣기도 전에, “나 깨우려고 일부러 전화한 거지!” 한다. 억울하다. 엄마한테 안부 전화를 한다는 게, 무의식적으로 아내에게 전화를 했을 뿐인데. 나는 애교 섞인 목소리로 항변을 하고, 이내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으며 문득 파고든 질문 하나. ‘아내는 나에게 어떤 사람일까?’, ‘내게 아내의 존재 의미는 뭘까?’ 걸으며 생각에 잠긴다.           




2002년 월드컵은 온 국민을 하나 되게 했다. 그 열기에 편승해 나와 아내도 하나 되는 환상을 꿈꿨다. 나는 결혼이 우리 사랑의 종착역이라 여겼다. 내비게이션이 가장 빠른 길로 목적지를 안내해주듯 나는 결혼생활에도 내비게이션을 장착할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하지만 이 신념은 오래지 않아 착각이었음을 알게 됐다.  


내가 제대로 가본 적 없는 길의 연속이다. 큰길인 줄 알고 들어섰는데 좁은 골목길이었고, 어디론가 연결되겠거니 했는데 막다른 길이다. 여러 갈래로 나뉜 산지사방 길목에서 머뭇머뭇하고, 갔던 길을 되돌아오기도 수차례다. 때때로 길을 잃어 조바심도 난다. 끊임없는 인내의 터널을 통과하라 강요한다. 결혼과 동시에 ‘가보지 않은 길’을 그렇게 줄달음질 치다 보니 20년이 가뭇없이 사라져 버렸다.            


20년. 마냥 좋기만 하거나 그저 나쁘기만 하지는 않았다. 아내를 좋아하면서도 싫어하는 양가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탔다. 어떤 날은 뒤통수도 보기 싫은 날이 있고, 어떤 날은 목소리라도 듣고 싶은 날이 있다. 어떤 날은 전생에 무슨 죄를 져서 저 인간이랑 사나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안쓰러운 마음에 아내 몰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이라고 해서 그 안에 사랑만 있지는 않다. 사랑만으로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갈등의 중심에 설 때, 우리 관계가 더 넉넉해지고 풍성해진다. 부부관계도 대부분의 인간관계와 맞닿아있다. 갓 구워낸 버터 향 가득한 빵처럼 따뜻함과 신선함을 유지하려면 그에 걸맞은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평범하다 여긴 일상도, 늘 곁에 있을 것 같던 사람도, 오늘 다음에 내일이 올 거라 여겼던 믿음도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삶에 대해 새로운 태도가 요구되는 요즘이다. 언택트(untact 비대면) 시대, 누구를 만나는 것이 꺼려진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며 서로가 조심할 수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나는 아내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예전에는 아내는 아내대로 볼일을 보고, 나는 나대로 내 일을 하다 보면 얼굴 맞대고 이야기할 시간이 없었다. 하루 10분 남짓 정도가 전부였다.    


요즘은 이른 저녁을 먹고 산책로를 걸으며 최소 1시간 이상 아내와 대화를 한다. 아토피로 고생하고 있는 딸내미의 이야기부터 아들내미 태권도 도장 이야기, 이번 아버지 생신에 어떤 음식을 장만할지, 앞으로 노후설계를 어떻게 할지까지 다양한 소재가 이야깃거리가 된다.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어떻게 참고 살았을까 싶을 정도로 아내는 쉬지 않고 조잘댄다. 그런 아내가 사뭇 곰상스럽고 사랑스럽다. 산책을 하며 새로운 아내를 만난다. 


아내는 따뜻한 사람이다. 정서적으로 안정적이며 차분하다.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사람중심의 가치에 따라 의사결정을 한다. 이런 성격의 아내는 내 장점을 주로 봐준다. 내 찧고 까부는 감정 변화도 잘 읽어주고 진국스러운 응원의 말도 아끼지 않는다. 정직을 삶의 지표로 삼고 있어 거짓말도 잘 못한다. 물질적으로도 욕심이 별로 없다. 그런 아내가 욕심을 내는 것이 있다. '관심'이다. 내 마음만 주면 된다. 아내의 이야기를 '들을 귀'만 준비하면 된다.          


‘된장 신 것은 1년 원수요. 아내 못된 건 평생 원수다’는 속담이 있다. 아내의 역할이 한 가정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표현한 말이다. 된장 등 다른 것들은 대체가 가능하지만 아내는 대체 불가하다. 한 번 잘못 만나면 일생을 그르칠 수도 있다. 아내는 일생의 반려자로 내 생각과 행동에 중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나는 결코 독립적인 개체일 수 없다. 아내는 내게 그런 존재다.    




이번 코로나 사태는 조급하게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소중한 아내에게 좀 더 집중하라고 얘기해주는 듯하다. 언젠가 이 사태가 종식되고 어떤 힘겨움이 있었는지도 잊고 살만큼 바쁜 일상으로 돌아가겠지. 지금의 힘든 것들이 오늘을 위한 것이었음도 알게 되겠지. 이 변함없는 사실과 함께 코로나19는 나에게 ‘새 아내’를 만나게 해 준 소중한 경험으로 기억될 것이다.           


오늘도 저녁식사를 마치고 아내와 함께 산책을 한다. 산책로를 걸으며 담소를 나눈다. 가끔씩 한눈을 흘금흘금 팔아 이야기가 끊긴다. 침묵 사이사이 여름이 깊어간다.                



내 늙은 아내 / 서정주


내 늙은 아내는 아침저녁으로

내 담배 재떨이를 부시어다 주는데,  


내가 "야. 이건 양귀비 얼굴보다 곱네.

양귀비 얼굴엔 분 때라도 묻었을 텐데?" 하면,   


꼭 대여섯 살 먹은 계집아이처럼

좋아라고 소리쳐 웃는다.     


그래 나는 천국이나 극락에 가더라도

그녀와 함께 가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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