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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봄일춘 Dec 21. 2021

추억은 힘이 세다


시작은 2주 전이었다. 나는 「사랑에 빠진 악마」의 수렁에 빠졌다. 이 불편하고 어색한 동거로 나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마감기간이 다가올수록 내 안의 또 다른 악마가 속삭인다. “서평이고 뭐고 이 책을 끝까지 읽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망상은 집어치워!”, “서평, 까짓 거 한 번 안 쓰면 어때?”, “사람이 살다 보면 약속을 한 번쯤은 어길 수도 있지!” 악마가 아침저녁으로 왁자 떠든다. 화드득 떠든다. 미칠 지경이다.


마감이 훨씬 지나고 나서야 나는 화들짝 꿈에서 깨어났다. 머리맡에는 악마(「사랑에 빠진 악마」)가 여전히 놓여있다. 내 처분을 기다리며 잠잠하다. 그 조용한 자태에 흠칫 몸이 움츠러든다. 놀란 마음을 추스르며 나는 어느새 악마를 잡아끈다. “내가 스물다섯 살이었을 때의 일이다.” 첫 문장과 함께 다시 갈등 시작이다. 이어서 침묵. 침묵이 나를 다시 깊은 생각에 잠기도록 이끈다. 이 이끌림의 끝, 이번엔 끝까지 가보겠다는 마음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가책의 목소리가 내 가슴 깊숙한 곳에서 소리 없이 외치지만 않았다면, 나는 내 영혼이 소멸되었다고 믿어버렸을 것이다.(p.133)” 다잡은 마음과 가책의 목소리가 한데 뒤섞인다. 뫼비우스의 띠가 되어 내게 수시로 덤벼든다. 수시로 달려든다.




“나는 필연적으로 난처할 수밖에 없는 내 열정의 귀결들에 대하여 이 모험이 시작된 이래로 가장 슬픈 명상에 잠기기 시작했다.(p.107)” 책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나의 마음 상태는 줄곧 이러했다. 사랑에 빠진 악마 비온데타를, 그 사랑을 주저하고 회피하는 알바로를 만난다. 아니 나를 만난다. 종교적 신념과 사랑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스물다섯의 나를 만난다.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내디딜 수 없었던 답답하고 숨이 막히던 스물다섯의 사랑을 만난다.


“불법적인 욕망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목소리로 가장하여 의식의 표면을 배회할수록, 그리고 그것이 점점 더 확고한 현실감을 주체에게 심어줌으로써 설득력을 얻을수록, 초자아는 역으로 더욱 광포한 폭력을 휘두르는 무시무시한 이미지를 띠게 되는 것 같다. (중략) 억압의 회귀는 곧 억압된 것의 회귀를 의미한다.(p.160)”


작품 해설이 압권이다. 비온데타와 알바로의 은밀한 속삭임은 리비도와 초자아의 경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스물다섯 살의 내 모습의 다름 아니었구나! 억압의 회귀는 곧 억압된 것의 회귀였음을 몸소 체험했던 스물다섯의 나를 다시 마주하는 시간이 이토록 어색해 책장을 덮고 또 덮었구나! 책을 읽는 동안 나를 둘러싼 공기, 온도, 습도가 그토록 어색했던 이유가 결국 나였다. 스물다섯 살의 나였다.




“내가 스물다섯 살이었을 때의 일이다.” 책장 첫 문장이 다시 내게 말을 걸어온다. 그리고 어떤 기억을 소환한다. 선교사를 꿈꾸었던 스물다섯 살의 나와 “오빠, 우리 다시 시작해요!”라고 당차게 고백하던 스물두 살의 엣띤 소녀를 소환한다.  


군 제대 후, 학교를 복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봄날. 신입생 한 명이 나를 조심스럽게 부른다. 지난 학과 MT 때, 나와 같은 조에 속했던 신입생이었다. 

“응, 무슨 일이야?”

“어, 다른 건 아니고요. 오빠, 우리 사귈래요?”


강의실에 우리 둘뿐 이어서였을까? 고백에 거침이 없다. 그 당찬 고백에 살짝 어이가 없다. 고리타분한 남성우월주의자는 아니지만 ‘여자가 남자에게 먼저 고백할 수도 있구나!’라는 신선함에 매료되어 그날로 우리의 1일이 시작됐다. 




흔히 그러하듯이 “아침 이슬의 신선함과 향기를 머금은 봄날의 새벽안개 사이로 떠오르는 첫 햇살(p.41)” 같은 풋풋한 러브스토리는 오래지 않았다. 이유는 명징明徵했다. 종교적 가치관이 달랐다. 일찌감치 선교사의 비전을 가지고 있던 나와 그녀는 많은 부분에서 달랐다. 우리의 감정은 진심이었지만 나의 종교적 신념이 우리 사이를 옥죄었다. 결국 대학 2학년을 마치고 나는 선교사의 길을 가기 위해 유학길에 올랐고, 우리의 이야기는 그렇게 일단락됐다. 그렇게 끝인 줄 알았다.


1년간의 대만 유학을 마치고 나는 복학했다. 더 확고해진 종교적 신념과 비전을 가슴에 품고. 하지만 그 확고함을 비웃기라도 하듯 우린 다시 한 강의실에서 만났다. 같은 3학년으로. 사라졌던 옛 감정들이 다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오빠, 우리 다시 시작해요!” 첫 번째 고백보다 더 당당해진 두 번째 고백에 지난 1년 동안 견고하게 쌓아 올린 종교적 신념의 방벽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심지어 나는 우리 사이를 합리화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우리가 다시 만났고, 이렇게 다시 사랑을 속삭이게 되었노라고. 첫 선교지는 저 광활한 중국이 아닌, 내 앞에 서있는 이 가녀린 여자라고.  


“오, 어머니! 안타깝게도, 저는 가장 거역하기 힘든 열정의 포로가 되었어요! 이젠 저 스스로 그것을 제어하는 것이 불가능해졌어요. 아, 저의 가슴에 대고 말씀해주세요. 제가 그 열정을 내쫓아야만 하는지를......(서문)


사랑에 빠지지 않는 한 사랑은 없다. 사랑은 열정에 충실하기만 하면 된다는 점에서 가없이 쉽지만, 내 신념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점에서 가없이 어렵다. 소명이 아직 충분히 결정되지 않았음에도 그 방벽의 견고함 앞에 나의 열정은, 진심은 보잘것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내 진심을 제대로 전하지도 못한 채, 그렇게 스물다섯의 사랑을 떠나보내야 했다. 




그로부터 꼬박 1년이 지난 시월의 어느 날. 운명의 장난처럼 밴쿠버 다운타운의 어느 횡단보도에서 그녀를 마주쳤다. 5m 정도의 거리를 두고서 나는 이편에 그녀는 저편에. 드라마에서나 볼법한 장면이 내 앞에 펼쳐졌다. 차량의 경적소리도, 길을 걷는 사람들도, 노란 벽돌 위의 비둘기도 모두 정지 장면이다. 오직 나와 그녀만 생동감이 있다. 나는 이편에서 그녀는 저편에서 나를 응시하고 서있다. 평소에는 짧게만 느껴지던 신호가 갑자기 길어진 느낌이다. 애면글면 신호가 바뀌고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날 우리를 둘러싼 공기, 온도, 습도가 무척이나 어색했다. 하늘은 파랗고 햇살은 노랗고 바람은 시렸다.




이어폰 너머 자우림의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흐물흐물거린다. 한마디 귀띔도 없이 아무렇지 않은 듯 돌아선 시간이 섭섭하다. 언어가 섭섭하다. 다시 오지 않을 시간에 더욱 슬프다. 무뎌진들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사랑이 그렇다. 추억이 그렇다. 스물다섯의 내가 그렇다.


                                                                     자크 카조트 지음 / 최애영 옮김, "사랑에 빠진 악마", 열림원,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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