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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ㅂ ㅏ ㄹ ㅐ ㅁ Apr 27. 2022

잿 빛

잿빛 하늘을 보면 마음이 안정됐다.

낮고 무거웠지만 가까웠고 내가 가진 색에 가까워 편안했다. 하지만 어디서고 잿빛이 좋노라 말하진 않았다.

좋아하고선 좋다 말하지 못하는 꼴이 짝사랑 같았으나 그 짝사랑 상대가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보잘것없을까 봐 감추었다. 마치 그 짝사랑 상대가 내 수준을 나타내듯이.

마음속은 장마인데 내 속과 달리 화창하고 아름다운 것들 앞에서 이슬이 맺히곤 했다. 냉장고에서 꺼낸 물을 따라둔 컵이 따듯한 공간에서 컵 밖으로 눈물  흐르듯이. 나와 온도가 다른 사람, 장소, 상황에서 연일 장마였다.

잿빛 하늘이 몰려오는 날은 두려움과 익숙함이 함께했다. 달든 이들의 표정이 나와 비슷해지는 날이었다. 모든 것이 채도를 낮추는 날. 

봄인데 그런 날이다.

경이롭던 풍경이 채도를 낮추었다. 하지만 이슬은 맺히지 않았다. 그래서 고백했다.







[ 나다운 고백 ]

네가 다가오는 날이 좋았어_

넌 내 마음의 무게처럼 낮고 무겁게 다가와 줬어_

내가 울적에 네가 내려준 빗물이 좋았어_

내 쪽팔림이 자유롭게 빗속을 달리는 걸로 희석되었거든_

네가 번쩍이고 크게 소리칠 때면 정신이 번쩍 들었어_

내 안에서 들려오는 무서운 소리가 묻히고 별일 아닌 게 돼버렸거든.

내 어둠에 가장 가깝게 다가와 준 너였어_

내 어둠보다 조금 밝은 빛으로 나를 밝혀준 너였어_

네가 사라진 눈부신 하늘에 흰구름 사이에 섞여 빛을 살포시 가려준 것도 너였지_

그 덕에 눈이 멀지 않았어.

이제 선글라스가 생겼어_

그리고 눈으로 울 줄도 알아_

우산도 챙길 줄 알고_

네가 내게 준 깊고 낮은 사랑을 기억해.

고마워. 

내가 밝은 곳으로 걷다가 어둠을 만나더라도

나는 너를 기억할 거야_

네가 내게 준것들_

신발이 젖어 찰박거리던 발걸음 음악_

머리칼이 젖어 고개를 돌릴 때면 스윙으로 날아 뺨에 부딪치던 영상_

쫄딱 젖은 걸음으로 걷던 엉거주춤_

그 모습을 수건 들고 닦아주던 이들과의 만남.

예고 없이

네가 뿌린 비를 피해 제 몸 가릴곳은 찾아 뛰어 들어간 곳에서 만난 사람들_

넌 나를 그곳으로 보내준 거야.

그래서 난 네가 오는 날이 나쁘지 않아_

넌 센티함을 허락해주는 날이거든_

누군가에게 우산을 빌려줄 수도 함께 쓸 수도 있는 날_

난 너를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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