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처음 독후감으로 칭찬을 받았다. 그리고 독후감 대회를 나가는 기회들이 되어주었다.
나는 내가 왜 뽑히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비틀기.
나는 비틀었다. 내가 이곳에서 느껴야 할 정형화된 감상이 있을 터였다. 그건 작가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다. 그 시절 나는 바른 희망적인 소리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헛소리.
이상적인 그런 메시지 따위는 그럴만한 사람에게나 미치는 영향일 것이라 여겼다. 그러니 나는 그들의 메시지에 콧방귀를 뀌는 감상을 마음에 품었다. 하지만 결코 심사위원은 그런 내 꼬인 심보를 어여삐 여기진 않을 터였다. 어설픈 중간 사이에서의 타협을 썼다. 지나고 생각해 보니 내 어설픈 타협 지점이 건든 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불안, 불신이 아니었을까 싶다.
허용된 이기주의.
시간이 흘러 나는 조금 더 많은 책을 만날 수 있었다.
작가의 의도를 읽으려는 독서의 의도는 여전히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철저히 <자기중심적 이기주의자>가 된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을 꽤 좋아한다. 누구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는 평화적 이기주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