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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ㅂ ㅏ ㄹ ㅐ ㅁ Dec 06. 2023

(될) 뻔한 이야기가 있다

역행자 / 원씽 / 김미경의 리부트 

남자가 다가왔다.

눈은 서로를 훑으며 고개만 살짝 숙여 인사를 나눴다. 멋쩍은 미소는 남자나 여자나 다를 게 없었다.

급히 음식을 정하고 술을 고르기 전 '괜찮으세요?'라며 알 수 없는 주량을 가늠한다.


남자가 앉으며 식탁 왼편에 물건을 올렸다.

차키책 한 권이었다.


사회생활 2년 차 여자는 뚜벅이에 익숙했다. 하지만 책이라는 물성을 좋아하던지라 책 제목이 궁금했다.


소개팅이었다.

여자가 근무하던 병원에 다니며 친분이 있던 환자분이 친구를 소개해 줬다.

친분이 있던 환자는 자신에게 그다지 친분이 없는 친구를 소개해줬다.


"무슨 책이에요?"

딱 봐도 딱딱해 보이는 책이었다.

슬봐도 여자 취향은 아니었다.


"자기 계발서예요!"

남자는 책에 관심을 보이는 여자에게 책 소개를 한다.


"아~"

자기 계발서라는 책 표지에는 '부자', '돈'을 구하는 방법을 강렬하게 어필하고 있었다.

여자는 소설이었다면 계속 이어갔을 책 이야기를 급 마무리했다.


테이블 위에 있던 책은 잊은 채 어설픈 웃음과, 마음에 없는 헛소리들을 지껄이며 술이나 마셨다. '깊은 고독도 모르고, 물욕으로 가득 찬 너와의 자리는 오늘이 마지막이다.'





사회 초년생이던 여자, 사회 초년생이었을 남자

여자는 오랜 시간이 지나 마지막이라 여겼던 그 소개팅 자리가 생각나기 시작했다.

남자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남자의 왼편에 올려진 책이  그리워졌다.


어리석은 고상함을  장식한 옷, 빌어먹을 잡념이 발라진  얼굴, 내일 따위 상관없으니 오늘은 그만 잊자며 술을 부어 넣어 의미 없는 말을 지껄여 댔다. 그러고 돌아가는 길엔 누더기 같은 마음이 눈과 발걸음에 질질 흘렸더랬다.


여자가 만나려던 심연의 남자는 어디에고 없었고, 있었더라도 알아보지도 못했을 터였다.

여자는 심연에 닿아보지 않았으니까.


어딘지도 모를 곳을 부유하던 여자는 그저 부유한 사람을 욕보기나 했다.

못났더랬다.


여자가 진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읽다 뿐이랴, 작가가 쓴 문장에 혼자 답장을 써댔다. 학창 시절 고작 서기였던 여자가 글쓰기 하는 여자가 되어갔다. 쓰레기 같은 글 말고 쓰레기통 옆에 있는 글이라도 되면 좋겠다 싶었다.


신바람 나던 쓰기가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쓰레기통 옆에 오래 머물러서였을까?

혼자 취해버린 상태가 오래되면 세상이 취한 건지 내가 취한 건지 알 수 없다. 여자는 책 좀 읽는다며 자신에 취해버린 게 역해 책에서 잠시  떨어졌다.


사랑은 또 다른 사랑으로 잊힌다.

잊힌다는 건 모르겠고, 사랑은 또 다른 색의 사랑으로 이어졌다.

 역시 다른 장르로 넘어갔다.

그렇게 세상은 이어 나갔다.



자기 계발서

숙취해소음료였다.

여자는 취기가 오르면 자기 계발서를 찾아들었다.

'김미경의 리부트 & 마흔 수업', '웰싱킹', '원 씽', '역행자'



원씽
역행자
김미경 마흔 수업




뻔한 이야기인 줄 안 다하나, 그 뻔한 일들을 행하지 않았기에 그토록 쪽팔려 피해 돌아갔나 보다.

돌고 돌아 다시 그 자리라면 그 뻔한 이야기 제대로 읽어나 보자 싶었다.


남자는 그 뻔한 이야기를 식탁에 두고, 뻔뻔한 여자는 뻔한 남자에 콧방귀를 뀌었었던 것이다.


우리는 모두 될 뻔한 이야기들을 안고 살고 있다.


여자는 이제 될 뻔한 이야기를 지껄이기 싫어졌다.

될 만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수년 전 소개팅 남자책을 떠올렸다.


우리는 될 만한 사람들이기도 하니까.

뻔한 이야기를 뻔뻔하게 하는 사람들은 자기 계발이 가능했다.

그들은 개발에 땀나듯 뛰었으니까.

개 멋지다.

개 멋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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