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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ㅂ ㅏ ㄹ ㅐ ㅁ Jan 08. 2022

고삐

 




몇 해전 오케스트라 연주회를 무료 티켓을 받아 간 적이 있다. 고상한 누군가의 취향쯤으로 여겼던 그곳에 간 건 순전히 경험을 위해서였다.

유명한 연주회가 아니었음에도 나와 같은 마음으로 공짜니까 자리 잡은 이들도 있을 터였다.


맨 뒤쯤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연주자들은 손톱만 한 크기로 보이는 거리에 자리 잡아 미니어처 같았다. 불이 꺼지고 그들에게만 조명이 비추어졌다. 시작과 동시에 나는 눌리고 말았다.


저 멀리 미니어처가 뿜는 음들이 가는 줄이 되어 내게 뻗어와 포박했다. 홀을 메우고도 나가지 못한 음들이 내 안으로 들어오려는 듯 들이닥쳤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심장이 압을 못 이기고 터질지도 모른다 싶을 때 주책없이 눈에서 터져버렸다.


'아.. 쪽팔려... ㅜㅜ'

'나 말고도 다른 사람이 질질 짜고 있으면 좋을 텐데..'


나는 그 경이로운 순간에 부끄러워했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서둘러 다른 생각을 불러 모았다.

감성이 풍부하다는 건 참 피곤한 일이다. 수습해야 할 순간이 많다. 빨간 눈이 어색하지 않게, 저린 코끝이 떨림 없이 제자리로 돌아서도록, 실룩거리는 입꼬리를 적당히 당겨 올려야 했다.


TV 음악 프로그램을 보면 노래를 들으며 꼭 눈물짓는 이들을 담아낸다.

'무슨 사연이 있길래.. 삶의 어느 지점이 피어올라 울고 있을까.'

무언가에 온전히 매료되어 내 안의 것이 나오는 희열을 그제야 조금 이해했다.


바람이 일어 꽃이 피고 지고, 두드리는 음악을 만나면 내 안에 질주하는 야생마의 움직임 때문에 어쩔 줄 몰라했다. 당근, 채찍을 주더라도 금세 허기지고 말아 동동거리는 그 발걸음을 읽어주지 못했다. 미치지 않고서야 '내 안에 이 달음질하고 싶어 한다' 누구에게 말한단 말인가_

그저 멍하니 진정되길 바라며 어느 곳을 응시할 수밖에_


이 말의 고삐는 누가 쥐고 있을까_

그 고삐를 배우자, 연인, 자녀, 부모에게 맡겨두었다면 내가 가는 곳과 내 안에서 걷고자 하는 길이 일치할까_

갈팡질팡한 마음이 고달파 그냥 누군가에 이끌려가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어 이 '고삐'를 잡아 줄 이를 찾아다닌 여정이었다.


어린 시절 서울로 장사를 가신 엄마와 자신의 시간을 채우려는 아빠를 대신해 소를 도맡았다.

개그 코너에서 '소는 누가 키우노~'라는 말에 웃지 못한 1인이었다. 


소의 고삐는 내게 쥐어졌다.

오후 2시~4시가 되면 소와 함께 들로 나가는 시간이었다. 작은 가방에 리코더, 노트, 연필을 챙겨 들고 나섰다.


소는 앞장서 늘 가던 곳을 향했다.

고삐를 잡고 그 뒤를 따르는 나는 채근할 일 없이 소와 발걸음을 맞춰 걸었다. 항상 가던 곳은 풀이 자랄 새 없어 다른 곳을 찾아야 하는 날이 많았고, 다른 소와 겹쳐서도 안됐다. 먹는 동안 조바심 없고 다툼이 없어야 고삐를 책임진 내가 편하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곳을 향하는 날은 고삐에 힘이 들어갔다.

좌회전, 우회전 깜빡이는 고삐를 왼쪽, 오른쪽으로 옮겨가며 조절한다. 브레이크 기능은 고삐로 소의 몸통을 쪼개듯 쳐준다. '워~워~' '잘잘잘' 먼저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바쁜 걸음에는 '이랴~ 이랴~'


이 짧은 언어들과 고삐가 이끄는 방향을 따라 소는 나와 함께했다. 실컷 뜯고 집에 돌아가 되새김질할 풀을 채우며 듣는 내 리코더 소리가 그 친구에겐 클래식이었길 바래본다.




© jediahowen, 출처 Unsplash




고삐를 맡긴 소. 

서로에게 주어진 임무 안에서 참 좋은 연대감을 느꼈다. 송아지를 낳으면 기뻐했고, 팔려가는 날은 함께 울었다. 아이 잃은 어미의 심정을 그 시절 이만큼 알았더라면 더 크게 울어줄 걸 그랬다.


너는 내가 쥔 고삐가 행복이었을까_

내가 이끄는 곳이 만족스러웠을까_


지금에서야 새삼 '고삐'를 떠올리며 너와 나를 떠올리는 이 순간. 남에게 맡겨진 고삐가 주는 안도감과 뒤늦게 찾아드는 허탈감을 알고서 너의 고운 눈망울이 떠올랐다.

속눈썹 파마 따위 필요 없던, 원조 서클렌즈를 끼운 너의 눈 안에 비치던 내 유년시절이 혼자가 아니었음을 알고 만다. 나는 누군가에게 그렇게 맑은 거울이 되어준 적이 있었을까? 집안에 있던 소가 다 팔려나가고 내게 쥐어진 고삐도 사라졌다. 


내게 걸린 이 고삐는 주인 잃은 소 마냥 하염없이 떠돌지 않도록 내 손에 잘 쥐어본다. 급할 땐 이랴이랴.. 빠르다 싶을 때는 워~워~.. 쉬어야 할 때는 고삐를 잡은 손에 힘을 뺀다. 맘껏 즐긴 것들로 오늘 밤 맛나게 되새김질해야지. 


끝없이 변화되는 맛. 

변화는 새로운 것이 우연히 찾아드는것이아니라 내안의 고삐가 이끄는 곳으로의 여정일지 모른다.

나는 변한게 아니라 나에 이르고 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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