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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ㅂ ㅏ ㄹ ㅐ ㅁ Jan 10. 2022

엄마의 무례함을 용서해

나다운 필사 


세상은 넓고

너는 작다는 말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 무루 / 나다운 필사 


      

아,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책을 단 한 권만 읽은 사람'이라는 말이 맞다.

이제 막 하나를 알게 된 사람. 혹은 남들보다 하나를 더 안다고 믿는 사람의 확신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무지하다는 겸손을 상실한 인간의 오만이란 얼마나 폭력적인가. p19



어른의 충고란 늘 위계 속에 있어서 권위적이고 무례했다. 나는 그들의 말보다 그들의 말투와 그 말투 속에 깃든 확신이 끔찍했다. 어른이 되고서야 그 마음을 짐작한다. 살아보니 경험의 총량에 비례하는 지혜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나를 어딘가로 움직이게 하고, 다시 설 수 있도록 일으켜 주었던 말들은 언제나 나를 잡아끄는 말이 아니라 나를 안아주는 말이었다. p20



아이를 단속하는 어른의 말들 대부분은 불안에서 기인한다. 아이의 인생에 내재된 불행의 가능성은 부모의 가장 큰 약점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위해 단단히 울타리를 쳐도 부모의 마음에는 늘 얼마의 불안이 있고 불안은 마음을 위축시킨다. 변수나 모험, 판타지가 느긋하게 끼어들 틈이 없다. p21



온통 불확실한 가운데 확실한 것은, 확신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뿐이다.










[나 다 운 이 야 기 ]



나는 스스로를 집 없는 민달팽이라고 생각했다.


어디든 피할 곳만 있다면 그곳이 집이라고 여겼다.


강해져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겉모습이 강해질수록 내면은 약해져갔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튀김이 차라리 더 나아 보였다.


타인에게는 친절했지만 나에게는 무례했다. 어차피 타인이 아닌 내가 나에게 가하는 무례함은 상처라 여기지 않았다. 


그게 문제였다.


아이가 태어나 자라났다. 아이는 늘 먼저 사과를 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님을 어렴풋이 알지만 그래야 상황이 정리가 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버렸다. 아이는 자신에게 무례해져갔다.


가끔 우는 아이의 울음소리는 애달팠다.



어느 날,


"엄마. 왜 항상 나만 먼저 사과해야 해요? "



"네가 잘못하지 않은 일에는 먼저 사과하지 마~ 불편하다면 지금 그 마음을 솔직하게 말해보구~"



나도 잘 하지 못하는 것을 말하면서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엄마가 된다는 건 교과서 같은 정답을 요구하는 아이에게 좀 더 지혜로운 답을 줘야한다고 여겼다. 변해야 했다. 그 어느 때보다 더 빨리 아이보다 앞서 나는 미처 자라지 못한 내 안의 아이를 키워야 했다.


아이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관계의 언어들을 물어온다. 마치 엄마는 다 알고 있을 거라는 기대의 눈빛으로.


하지만, 나는 다 알고 있지 않다.

아는 척하는 엄마 노릇은 아무래도 글렀다.

아이에게 엄마도 엄마가 된지 9살이라는 고백으로 우리는 동등한 관계가 되었다.


나는 지붕이 되고 싶었지만 사실은 벗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쁘지 않다.


아이를 위해서 많은 걸 배우게 되었다.

나의 인생은 이 아이가 다시 만들어 준거라고 생각해도 될 만큼 다채로워지고 있다.

아이 스스로 삶의 주체가 되길 바라는 만큼 나는 내 인생의 주체가 되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아이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실패하면 잠시 울더라도 다시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아이가 우러르는 우주 같은 '엄마'가 된 나는 불확실한 모든 것들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함께 배우며 성장해 나가고 있다.



여전히 답은 없다.


민달팽이가 열심히 지나간 자리의 흔적을 남기며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할 뿐_


세상은 넓고 너는 더 드넓다.

엄마의 무례함을 용서해줘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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