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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쓰다미리 Sep 02. 2024

내가 나를 믿는 이유

고 3 수능이 끝나자마자 하교 후에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았고, 막연하게도 장사가 잘 되는 가게는 아르바이트비를 많이 줄 것 같았다. 읍내에서 가장 큰 고깃집으로 무작정 찾아갔고, 알바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도 작지만 그때는 더 작고 말랐는데도 사장님은 당장 오늘부터 할 수 있는지를 묻고 난 후 가능하다고 하자 바로 주방에서 설거지를 시작하라고 했다.      


교복을 입고 시작한 설거지는 싱크대를 넘치고 넘쳐 바닥을 다닐 수 없을 정도로 깔려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설거지를 했고, 두 번째 달 때쯤 됐을 때 사장님이 앞치마를 입고 있는 내게 “오늘부터 홀에서 서빙해”라고 하셨다. 앞치마를 묶던 손 그대로 멈춰서 “진짜요? 진짜요? 진짜예요?”를 몇 번을 물어봤는지 모른다. 함께 일하던 이모들은 파격승진이라며 어디 설거지 2달짜리가 홀서빙을 하냐며 놀렸지만 그날 저녁에는 콜라를 한 잔 따라주시며 축하해 주셨다.  대학 입학으로 알바를 그만두게 됐을 때 사장님은 한 달치 월급을 더 주시면서 방학 때 꼭 다시 오라고 손을 잡아주셨고, 그 후 집이 인천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다시 그 가게를 가지 못했지만 설거지 막내에서 홀 서빙으로 승진을 하던 날의 기분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그때의 자신감으로 다음 알바는 학교 후문에서 가장 잘 나가던 호프집이었다. 가게 앞에 붙여진 “알바구함”을 보고 이력서를 제출했지만 다음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연락은 없었고, “알바구함”은 그대로 붙여 있었다. ‘나 홀서빙으로 승진한 여자야’라는 자신감으로 문 앞에서 붙여 있던 알바구함을 뜯어서 들고 들어가 사장님께 말했다.      


“저 월요일 이력서 냈던 사람인데요, 알바 안 구해지시면 그냥 저 쓰세요. 저 일 잘해요”      


아이고, 지금 생각하면 스무 살의 배짱인가 싶지만 한 번의 승진(?) 경험으로 자존감이 가득이었던 때였나 보다. 어이없어하는 사장님이 마지못해 허락을 해주셨지만 분명 홀서빙 알바 구함이었는데 주방으로 들어가라고 하셨고, 두 번째 알바를 다시 설거지로 시작했다. 설거지와 오징어 굽기, 기본 안주였던 달걀찜 세팅이 기본 업무였는데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오징어 하나요”라는 주문에 오징어를 구웠다. 한참 후 사장님이 “오징어 왜 안 나와?”라고 하셔서 너무나 해맑게 “오징어는 다 구웠는데요”라고 말했다.      


“야!!!!!!!!!!!!!!!!” 


윤도현을 닮았던 사장님의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오징어를 구웠으면 가지고 나와야 될 거 아니야~~~~~~~~~~오징어 다 말랐잖아~~”


아니, 나는 오징어를 구우라고 해서 오징어를 구웠는데, 

아니, 오징어를 가지고 나가야 되는 거면 오징어를 구워서 가지고 나와~까지 말해줬으면 됐잖아..... 요

라고는 말을 못 하고, 눈물만 뚝뚝뚝 흘렸던 기억이다. 

그 후로도 윤도현 닮은 사장님의 눈알은 몇 번이나 튀어나왔고, 그때마다 나는 눈물만 뚝뚝 흘렸다. 분명 고깃집에서는 이모들 사랑을 듬뿍 받았는데 호프집에서는 왜 이렇게 혼나나 서럽고 슬프고, 출근하는 매일이 힘들었는데 그래도 결국 역시, 시간이 필요한 법!! 

마지막 알바를 마치던 날 사장님은 “이렇게 일을 잘하면서 첫날 오징어는 왜 안 내왔냐”라며 그날의 일을 끄집어내셔서 다시 나를 울리고 말았다.      


그때 이후로 하루도 쉬지 않고 종목만 바꿔 계속 됐던 알바의 경험들은 늘 나에게 작은 성공들이었다.

한 달에 30만 원 학원 보조 알바에서 초등 저학년 반 하나를 맡게 된 적도 있었고, 리서치 회사에서 전화설문조사 알바를 하다가 알바들을 관리하는 계약직 제안을 받아 학교를 휴학한 적도 있었다. 19살 때부터 첫 직장을 잡던 26살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알바를 했는데 학기 중에는 공부를 하고, 방학 중에는 해외여행을 다니던 친구들은 하루도 쉬지 않고 알바를 하는 나를 안쓰러워하기도 하고, 미련스럽다고도 했지만 나는 알바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알바를 하는 곳에도 언제나 사람들이 있었고, 배움이 있었다. 좋은 사람들이 더 많았지만 나를 미워하고, 질투하고, 괴롭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더 많이 사람에 대해 배울 수 있었고, 그때의 그 경험들 덕분에 나는 새로운 일을, 새로운 사람을, 새로운 공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경험하고 좌절하고, 이겨냈던 시간들이 나에게는 누구보다도 많이 있었으니까.      


내가 경험했던 것.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것들.

그리고 그 과정을 잘 지나온 나. 

그래서 나는 내가 좋고, 나를 누구보다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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