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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꽃 Feb 28. 2024

소설 <연을 쫓는 아이>를 읽고

죄의식과 카타르시스를 통한 완전한 치유과정

For you, a thousand times over. 
도련님을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수년간 내가 소설을 읽지 못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어른이 되고 삶과 꿈의 경계선이 명확해지면서 나는 좀 더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정보와 휴식을 원했던 것 같다. 그것도 아니면 숲멍, 물멍, 불멍 등 채우는 것이 아닌 비우는 편을 선택한 나는 차라리 덜 심각해지는 편을 선호했다. 


그런데 다시 만난 소설이 아프가니스탄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라니, 도저히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소설 <연을 쫓는 아이>의 첫 장을 펼치며 나는 지난 해 딸 아이와 함께 본 영화 <아프가니스탄의 눈물>이 떠올랐다. 당시 나는 영화를 보며 나의 무지와 불편한 진실에 몸부림 쳤던 기억이 있다. 지구 저 편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정말 사실이라니! 


안전하고 포근한 집 쇼파에서 따뜻한 차 한 잔에 몸을 녹이며 아미르의 이야기를 듣는 나는 종종 '내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들'이 눈앞에 펼쳐져 또르르 눈물을 훔쳤다. 가슴이 답답했지만 허락하고싶지 않다은 마음이 들었다. 과연 나는 누구를 위해 우는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을 쫓는 아이를 보며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우리 주변에 또 다른 아미르, 하산, 바바, 라힘, 소랍 심지어 아세프가 살고있기 때문이 아닐까. 크게는 우리 사회 구석구석 사라지지 않는 신분, 인종 등 각종 계급의식으로 인한 갈등과 폭력 그리고 전쟁 속 다양한 인격체들이 떠올랐고 작게는 부모와의 불안정 애착관계로 인해 되물림되는 아이들의 죄의식에 마음 아팠다. 아미르가 그랬던 것처럼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건 되물림을 끊어낼 용기와 용서가 아닐까? 


책에서 용서란 '화려한 깨달음이 아니라 고통이 자기 물건들을 챙기고 짐을 꾸려 한밤중에 예고 없이 빠져나가는 것과 함께 시작되는 것일지 모른다'고 했던가. 마치 아미르의 우상 바바가 과오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 행했던 수많은 선행처럼 어쩌면 죄책감이 선행으로 이어진다는 말이 백번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책 속에서 세 인물의 죄의식을 엿볼 수 있다. 선행으로 이어졌던 바바의 죄의식, 엄마를 죽게했다는 아미르의 죄의식과 바바를 향한 양가적 감정으로 인한 불안정 애착, 하산을 대변했던 소랍의 죄의식, 마지막으로 이 세 사람이 죄의식에 머물러 마침내 스스로 용기를 내고 자신을 용서하도록 관찰자 역할을 톡톡히 해낸 하산은 정신분석학적으로 분석가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바를 숭배했으나 그의 흑백논리와 종교에 가까운 도덕관념은 아미르로 하여금 저주라는 양가적인 감정이 들게했고 그래서 자신에게 그토록 충실한 하산을, 바바가 그토록 아끼는 하산을 향해 아미르는 치욕감을 허락하고 만다. 심지어 바바가 가장 싫어하는 도둑질이라는 죄명으로 아미르는 하산을 배신했다. 


그리고 그 일은 아미르에게 오랜시간 고통의 씨앗이 되었다. 


이후 아미르는 소랍을 하산과 동일시하며 카불에서 구해내는 방식으로 내면의 죄의식을 씻어내 스스로를 용서하는데 첫 발을 내딛게되는데 이는 마치 바바의 죄의식이 선행으로 이어졌던 것과도 같다. 


결국 소설은 죄의식과 카타르시스를 통해 완전한 치유과정을 그려내고 있었다. 처음과 마지막을 함께했던 연 날리기는 그들과 우리 인생에서 오는 갈등과 화합 심지어 고통으로부터 기인한 카타르시스를 전해주는 훌륭한 비유라는 생각이 들었다.'젠다기 미그자라(Zendagi Migzara), 소설이 끝나도 삶은 계속된다. 


문득. 내 어린시절 작게는 잔혹하게 개미를 살해했던 기억이나 장난삼아 야쿠르트를 훔쳤던, 왕따 당하는 반 친구를 방관했던 일 등 오랜시간 용서하지 못했던 어린 나를 이제 나도 용서할 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창하거나 요란스럽지 않게 이제 나의 고통도 내 물건을 챙겨 조용히 과거를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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