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 책이 불편한가?
감상문을 쓰기 전 나는 대체로 서평을 읽지 않는다. 책을 읽기도 전에 서평을 접하면 생각을 정리하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다만 내 취향이 아닌 책이라면 감상문 작성 전에 반드시 줄거리를 재확인한다. 몰입도가 떨어져 놓칠 수 있는 내용을 체크하기 위함이다.
감상문을 작성한 후에 서평을 찾아보는 재미 또한 솔솔 하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독자를 발견했을 때 또는 내가 발견하지 못한 부분을 찾아냈을 때 마치 숨겨둔 알사탕을 하나하나 까먹듯 반갑고 즐겁다.
책 <인간의 흑역사> 역시 그랬다. 다만 인간의 흑역사는 감상문 작성 후 서평을 찾아보니 유독 호평이 주를 이루었다는 점이 신기했다. 왜일까? 내게는 어째서 톰 필립스의 <인간의 흑역사>라는 책이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다시 한번 독자의 시선으로 고민해 봤다. 그리고 새로운 시사점을 발견했다. (참고로 아래 감상문을 읽고 오면 이해가 쉬울 듯)
성공적인 마케팅 전략
나는 왜 이 책이 불편한가? 문득 저자가 본문에서 다룬 히틀러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히틀러의 연설문이 어떻게 그렇게 엄청난 파워를 가졌을지 생각해 봤다. 히틀러의 연설은 매우 흡입력 있기로 유명하다. 그의 연설은 확신에 찬 분노로 가득했고 강한 부정편향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바로 '부정편향'이다.
부정편향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인지오류다. 뇌는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사건 또는 감정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는데 이는 일종의 생존본능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 살기 위해 인류는 부정적인 사건들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해 온 것이다. 기억도 마찬가지라서 우리가 과거 좋은 기억보다는 나쁜 기억을 더 오래 남기고 상처받는 것과도 비슷하다.
그렇다면 확증편향이란 무엇일까? 기존의 신념 또는 판단과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방식과 태도를 일컫는다. 역시 생존본능에 기인하는 인간의 인지 편향이다. 그런데 만약 부정편향과 확증편향이 더해지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나는 히틀러의 분노에 찬 연설이 군중의 부정편향을 자극했다고 생각한다. 히틀러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군중이 부정편향에 주목하고 확증편향을 갖게 했다. 즉 부정편향에 확증편향이 가해져서 걷잡을 수 없는 나비효과를 불러온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집단사고의 엄청난 오류다. 마치 타인의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금의 트럼프 연설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우리는 우리 대신 분노하는 리더를 매력적으로 느끼기도 한다.
부정편향과 확증편향이 책 <인간의 흑역사>와는 또 무슨 관계가 있을까? 순간 나는 <인간의 흑역사> 저자 톰 필립스가 굉장히 똑똑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톰 필립스가 마케팅 적으로 활용한 건 바로 독자의 부정편향이 아니었을까? 인간의 흑역사에 거칠게 분노하고 비판하는 저자의 태도 말이다. 물론 나처럼 청개구리 기질이 다분한 독자라면 이렇게 딴지를 걸지만 말이다.
저자 톰 필립스가 대단한 점이 한 가지 더 있다. 만약 <인간의 흑역사>가 부정적이기만 한 책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진지하고 재미없어서 읽는 이도 적고 혹평이 많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톰 필립스는 책 곳곳에 유머와 해학을 배치해 두고 독자에게 즐거움까지 주고 있다. 반감이 들 만 하면 사이다 발언으로 나를 웃기는 작가라, 이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최고의 방어기제를 적당히 활용한 톰 필립스만의 기지가 아닐까? 어쩌면 나 같은 까칠한 독자가 나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리라. 분명 대단한 성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여전히 내 취향은 아니다. 나는 평소 옳고 그름에 기준을 두기보다는 다수의 의견에 대응하는 사고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돌려 말했지만 그냥 청개구리 기질이다. 물론 예외도 있다. 다수가 약자일 경우 기준점은 달라진다. 이는 나의 통제불안과도 관계가 있는데 나는 유독 정치적 언행, 선동하는 글 또는 흑백이 분명한 확신에 찬 말들을 선호하지 않는다. 책을 보든, 연설을 듣든, 대화를 나누든, 스스로 생각하여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글과 말을 좋아한다. 아마도 나 같은 사람은 가스라이팅 당할 일은 없으리라!? <인간의 흑역사>가 마케팅에 성공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좋아할 수 없는 이유는 대강 이러하다. 저자 톰 필립스에게는 유감이 없다.
실제로 나는 작가 톰 필립스에 대해서도 좀 '열심히' 알아봤다. 톰 필립스는 역사와 철학을 전공한 것 외에 현재 비영리 팩트체킹 기관인 Full Fact에서 근무하는 언론인이라고 한다. 이는 즉 <인간의 흑역사> 속의 팩트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뜻이다. 나는 문득 이 책이 청소년 또는 청년층에게 널리 읽히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공교육과 언론을 믿거나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제3의 시각을 제시하지 않을까? 나처럼 이미 청개구리인 사람에게 이 책은 이중 반항심만 꿈틀거리게 할 지도?!
한편 작가 톰 필립스의 인스타에도 방문해 보았는데 나의 판단 기준 중 '예외의 기준점' 하나가 바로 그곳에 있을 줄이야! 나는 동물애호가들에게 마음이 약하다. 그의 인스타에는 강아지 사진들이 많았고 나는 어느 순간 그의 인스타에 좋아요를 누르는 나를 발견했다. 이쯤에서 나의 MBTI가 F인 점이 탄로 났을 수도?
내가 생각하는 인간의 Best 흑역사는?
마지막으로 인간의 흑역사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가장 지독한 흑역사를 꼽아봤다. 바로 환경파괴이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끊이지 않을 흑역사, 그 어떤 흑역사보다도 정확하게 예측 가능하지만 멈추지 않는 흑역사가 바로 환경파괴 아닐까? 오늘은 이 거대한 화두를 던지고 다음 책모임에서 다시 환경문제를 이야기해 봐야겠다. 오늘의 책수다는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