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딸아이의 일기장

판도라의 상자

by 바람꽃


어른의 착각


딸아이가 어릴 때 내가 다짐했던 것 중 하나는, 최소한 내가 가진 좋은 습관들은 고스란히 물려주자 였다. 내가 가진 것을 주는 것이니 어려울 것 없겠지 했다. 그리고 나는 생활 속에서 꾸준히 아이에게 성숙한 어른의 본보기를 실천했고 그런 나의 긍정적인 면을 흡수시키려 했지만 이상하게도 아이는 내가 가진 장점들은 흡수하지 않더라. 오히려 내가 노력할수록 아이는 애써 거부했다. 특히 사춘기가 되면서 그러한 현상은 더 크게 두드러졌다.


물고기를 잡으러 함께 가주기까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점차 깨달았다. 탈무드에도 쓰여 있듯, 나는 아이에게 물고기를 잡아줄 것이 아니라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 그 부분도 내가 잘 못 이해한 것이었다. 물고기를 잡아주지 말아야 할뿐더러, 잡는 방법도 가르쳐 줄 필요가 없어야 맞다. 우리가 부모로서 해야 할 일은 단 한 가지, '물고기를 잡으러 함께 가주는 것' 뿐이었다. 나머지 배움은 오로지 아이의 몫인 것을 조금 늦게 깨달았다.


엄마와 반대이고 싶은 딸


사춘기 딸아이는 일기 쓰는 것을 싫어한다. 딸아이의 말에 의하면 요즘 애들은 엄마 때와 달라서 일기를 쓰지 않는단다. 엄마처럼 매일 일기 쓰고 계획하고 그런 거 싫단다. 그냥 마음 가는 데로 행동하고 기억하고 싶다고 말한다. 나는 아이가 일기 쓰기를 싫어하는 원인 중 한 가지쯤은 나에게 있다고도 생각했다. 다이어리 쓰기와 독서, 운동 그리고 음악 감상이 이미 습관이 되어있는 나. 하지만 기껏해야 최근 5년 정도의 아침 루틴일 뿐이다. 즉, 나 역시 근 40년을 '내키는 데로' 살아온 것이 사실이다.


원하지 않을땐 주지도 말자


오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한 2년쯤 오로지 아이에게만 집중하다 어느 순간 내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던 나는 인생을 최대한 내 중심으로 계획하기 시작했다. 물론 건강도 한 가지 이유로 작용했다. 비록 지루하지만 인간의 몸은 규칙적이고 안정적일 때 비로소 건강을 유지할 수 있으니 나는 내 몸을 일으켜 운동을 했고. 이미 중년을 향하는 내 인생의 시간표를 보며 나는 다소 조급해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나의 경험과 깨달음을 아이에게 일찌감치 알려주고 싶었다.


정말 터무니없지 않은가? 마흔이 훌쩍 넘은 엄마가 십대의 딸아이에게 과연 얼마나 설득력 있게 성실하고 건강한 생활의 중요성을 피력할 수 있을까? 나 역시 그 시절엔 아무도 나에게 그런 말을 해 주지 않았고 설령 누군가 말해줬더라도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을. 나는 아이에게 자꾸만 잘못된 신호를 보내고 또 때론 이해를 강요해온 것이다. 물론 넘침의 부작용을 무엇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결국 스스로 브레이크를 걸었고 그렇게 아이가 중학교 1학년 사춘기가 되니 나는 이젠 정말 멈춰야 함을 예감했다. 나는 나, 너는 너, 우리는 각각 분리된 인격체였다.


판도라의 상자


사춘기 딸아이의 일기장은 판도라의 상자이다. 정말 뭐가 들어있을지 궁금하지만 절대 열어봐서는 안된다. 그맘때 아이들이 자유롭게 다중 자아와 대화를 나누는 곳, 감정의 배설물을 쏟아내는 장소, 특히 엄마 또는 아빠와의 갈등을 매우 극적으로 휘갈겨 써 놓을 수도 있다는 점을. 나는 잊고 있었다. 내가 열세 살 쯤 일기장에 무슨 짓을 했는지. 그리고 사실 진심이 아니었음을. 단지 나의 못난 자아의 한 단면이었음을 이제와서 떠올려본다.


중학교 2학년 때쯤 한 번은 엄마가 나보다 두 살이 많았던 언니의 일기장을 훔쳐보고 상처받아 눈물을 보였던 기억이 있다. 엄마는 당시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고백컨데 나에게도 딸아이의 다이어리를 훔쳐보고 마음이 너덜너덜 해 진 경험이 있다. 처음은 어른스럽지 못하게 소심한 복수를 했는데 그때 아이는 더 이상 일기장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두 번째 아이의 일기장을 훔쳐봤을 때는 속상하고 억울해서 눈물이 쏟아져버렸다. 아직 내가 정신을 덜 차린 게지, 세 번째 일기장을 펼쳤을 때 나는 그것이 '판도라의 상자'임을 깨닫고는 읽지 않고 그대로 덮어버렸다. 그리고 그 후로 나는 더 이상 딸아이의 일기장을 펼치지 않는다. 궁금한 점이 있으면 대화로 묻고 행동을 관찰하기로 했다.


내 잘못이다.


사춘기 딸아이는 수많은 자아와 만나는 중, 정답이 있을 수 없는 나이, 마음껏 방황해도 좋을 나이, 나는 아이의 일기장을 덮으면서 생각했다. 딸아이가 충분히 고민할 수 있도록 시간과 공간을 허락하자고. 후에 사과했지만 아마도 나의 모자란 행동 때문에 아이는 일기 쓰기가 싫어졌을 수도 있다. 내 잘못이다.


그런 딸아이가 요즘 조심스럽게 다시 일기장을 펼쳤고... 나는 이제 다시는 판도라의 상자를 펼치지 않겠노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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