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과 돌》의 글귀걸이

황현산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 중

by 바람꽃 우동준


《천년 세월을 팔아 한 시절을 살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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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럼비 바위는 제주 강정마을에 있는 바위다. 그 바위가 있던 곳에 지금은 해군기지가 들어와있다. 오랜 싸움이 그곳에 있었고. 그곳을 향한 조소도 오래도록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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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비웃음은 구럼비는 그저 나무의 이름이고 그 구럼비 나무가 뿌리를 내린 바위가 구럼비 바위인데. 무엇이 그리 특별하냐는 것이다. 화산섬인 제주에 구럼비 바위는 널려있고. 따지고보면 구럼비 바위가 아닌 곳이 없을텐데 괴상한 감수성을 더해 본질을 호도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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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웃음 앞에 논리적으로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바위는 그저 바위일 뿐이고. 구럼비나무의 뿌리가 묻은 바위가 곧 구럼비 바위란 이 무결의 논리에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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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의 비웃음은 구럼비 바위는 기어코 안 된다는 너희가 사는 집이, 바로 민들레 바위 위에 지은 곳이라는 말이다. 깨끗한 이 없고 공범아닌 이 없으니 네게 말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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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깨지 않은 바위가 없으니 하늘을 달려 섬으로 올 수 있는 것이고. 제주의 소식을 이 작은 화면에 담아 언제든 보는 것일테니. 우리 모두는 공범이고. 우리 모두가 바위를 부쉈다. 그래. 그 또한 무결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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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보고 있다. 완벽한 논리로 세월이 시절로 대체되는 것을. 빈틈없는 이 시대의 구절들로 시절의 논리가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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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 경제 보상 이득 외교. 중요한 단어임과 동시에 우리 시대에서만 통용되는 단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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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이렇게 끝이 났다. 애비 위의 애비로. 그 애비 위의 애비의 이야기로 이어졌던 이 곳의 이야기는 더 이상 없다. 남은 건 내 시절의 콘크리트 건물과 40년 안에 다시 지어질 다음 시절의 콘크리트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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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을 감당하는 건 콘크리트가 아니라 바위다. 세월은 그렇게 바위로서 이어졌고 철골과 콘크리트로서 우리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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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산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 중 <황금과 돌>의 글귀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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