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가 찍고 쓰는 단편영화이야기
할머니를 부정하는 말이 아니다.
'나'라는 한 사람,
'스테파니'로 봐달라는 의미다.
이렇게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스테파니를 그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독님이 보내주신
영화 마스터를 본 나의 감상평이자
감독님에게 전한 인사였다.
대본리딩
이 영화는,
열정을 잃은 영화과 학생 세민과
자칭 춤 좀 추는 열정댄서 스테파니의
초록초록 싱그러운 만남을 그린
두 여자의 이야기다.
외향적인 긍정공감형
MBTI ENFJ인 나에게도
스테파니는 도전이었다.
할 수 있을까.
자칫 오글거리면 어쩌나.
내가 이렇게 귀여움?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궁금해하실 거다.
우선, 대본부터 들여다보자.
스테파니가 첫 등장하는 씬 3은
이 배역의 캐릭터를 드러내는, 드러내야 하는
중요한 장면이다.
S#3 들판, 오후
화단에 있는 꽃을 뷰 파인더로 보는데
오른쪽에서 순옥 프레임인
순옥: 익스큐즈미 학생~
갑자기 말을 걸어오는 순옥 때문에
세민의 카메라 앵글이 흔들린다.
카메라를 내리면 보이는 순옥의 얼굴
세민: (화들짝 놀라며) 아 깜짝이야
순옥: 뭐 하는 거야? 뭐 찍어?
세민: 아…아.. 네…
그냥 과제로 제출할 영상 촬영하고 있어요..
순옥: 뭐 영화 이런 건가?
세민: (조금 뜸을 들이다가) 네..
순옥: 그럼 나 좀 찍어봐.
(손뼉을 치며) 어머머 인터뷰하면
너무 재밌겠다 ~
세민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냥 웃는다.
순옥: 나 뭐 어디에 서면 돼 학생?
(몸을 왼쪽 오른쪽으로 움직이며)
여기? 여기?
세민: (귀찮다는 듯이)
아 할머니 그냥 거기 서면 될 것 같아요.
순옥: 할머니라니!
(고개와 손가락을 양쪽으로 흔들며)
노노노 스테파니!
세민: 아아…. 네!
그럼 스테파니 씨 간단한 자기소개랑
뭐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편하게 하세요.
순옥: 내 이름은 스테파니 순옥
나이는 비밀 ~띠는 알려줄게. 말띠.
(말 타는 흉내를 낸다) 다그닥다그닥
심드렁한 표정의 세민
카메라 화면이 아닌 다른 곳을 본다.
순옥: 나 이번 주말에
무용 대회 나가는데 한 번 봐봐 어때?
말이 끝나자마자 순옥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단편영화 디어, 대본 중에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시종일관 텐션 높은
유쾌 발랄 말띠 댄서,
스테파니. 라니.
배우님,
당황스러우실 거예요.
미팅했을 때 느낀 마레배우님의
에너지와 열정이 좋아서
그걸 담고 싶다고 생각하니
이런 이야기가 나오게 됐네요.
그랬다.
당황스러웠다.
해야 하는 건가, 말아야 하는 건가.
오디션을 봤던 원래의 배역조차
이 캐릭터가 아니었다.
스토리도 달랐다.
수정된 시나리오를 받은 그날
한 시간 가까이 전화 통화를 하고
이런저런 의견을 나누고...
열정 있는 순옥과
열정을 잃어버린 세민의 캐릭터에 맞춰
'좋아하는 걸 할 때 빛나고 행복하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감독님이 나에게 건넨 말이다.
....
고민하고.
.....
고민하고.
일어서든, 넘어지든,
믿고 가보자 싶었다.
대본리딩 2
감독님이 생각하는 텐션은 어느 정도일까?
우리는 초콜릿 개수로 말하기로 했다.
이번엔 초콜릿 100개요!! 120개?
세민역을 맡은
박한나배우님과 동선도 맞춰봤다.
내가 귀여울 수 있을까!
그래, 최대한 오글거리게만 하지 말자.
물론, 나 혼자만의 속엣말.
대본리딩_동선리허설
이번에 넘어야 할 것은
어떻게 춰야 할까?
감독님이 레퍼런스를 주시기도 했지만,
집에서 연습을 아니할 수가.
좋아하는 현대무용가,
피나 바우쉬의 유투브 영상을 보며
이렇게 저렇게 발을 움직여 보고
손동작을 하고 눈을 감아보고 뚱뚱 딱~
노을공원의 풍광과 맑은 날씨,
바람과 햇살에 몸을 맡겼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춤 장면이다.
좋아하는 것을 하는 열정에 찬 스테파니는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도
열정을 잃어버린 세민을
웃게 할 수 있을까?
엔딩은 여러분의
상상에 맡길 참이다.
이 영화는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들 뿐.
나는 스테파니가 온전히
반짝 이길 바랬다.
할머니가 아니라,
그 누구의 엄마나
아내가 아니라
좋아하는 것을 하는 빛나는 스테파니,
스테파니 순옥으로서.
초콜릿 150개 먹은 것처럼
텐션을 올리려고 했다,
그렇게 올린 텐션은
배우 장마레에게도
위로가 되었고 격려가 되었다.
하루 24시간 즐겁기만 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
때때로 힘겨웠던 시간들에게
스테파니가 힘이 되었다.
왜 그렇게 춤이 좋냐는 세민의 질문에
혼잣말처럼 던진 스테파니의 말이
나에게 하는 말처럼 들리는 건 왜일까.
디어 (DEAR)
Fiction/ Color/2024/12'23"
각본/연출:정승원 감독
출연: 박한나, 장마레, 김동규
같이 만든 사람들: 문선규, 이지현, 이정민, 원희진, 임진우, 송은재, 이현태, 윤이랑, 김산, 윤수원
좋은 걸 할 때
빛나고 행복하다고 믿는
정승원 감독님의
영화로운 시절을
응원합니다.
배우가 찍고 쓰는
단편영화이야기
'100명의 마레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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