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이방인의 고백,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경계에 선 이방인, "나의 삶은 충분히 귀하다"

"두 세계 사이의 이방인으로 살며 깨달았습니다. 내가 선 그곳이 어디든, 나는 나로서 충분히 귀하다는 것을."

한국을 떠나 캐나다에서 16년, 다시 돌아온 한국에서 10년.

내 인생의 궤적은 늘 경계선 위에 있었습니다.

처음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그저 반가운 마음에 나를 낮췄습니다.

내 이야기는 아껴두며 주변의 속도에 맞추려 부단히 애를 썼습니다.

튀지 않으려 노력했고, 상대의 마음을 먼저 살피는 것이 미덕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내가 나를 지우고 상대에게 맞춘다고 해서,

그들이 나를 온전히 받아들여 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요.

때로는 가족의 기쁜 소식이 누군가에게는 시기의 대상이 되고,

정성껏 일궈온 삶의 흔적들이 '자랑'으로 곡해되어 무시 섞인 말들로 되돌아올 때,

제 마음은 갈 곳을 잃었습니다.


캐나다에서는 한국인이라 서툴렀고,

한국에서는 캐나다식 사고방식이 낯설어 겉도는 느낌.

"나는 두 나라 어디에도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인 걸까?"

서글픈 질문이 밤잠을 설칠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두 세계를 모두 품을 수 있는 귀한 '틈'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임을요.


타인의 질투와 무시는 사실 그들 내면의 결핍이 내뱉는 비명일 뿐입니다.

그들의 잣대에 나를 맞추려다 보니

정작 가장 소중한 '나 자신'을 돌보지 못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내가 캐나다에서 흘린 땀방울과 눈물은

타인의 가벼운 질투로 깎여나갈 만큼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내 자녀들이 성실하게 일궈낸 오늘의 모습은 누군가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자랑거리'가 아니라,

한 어머니가 낯선 땅에서 온 마음을 다해 지켜낸 '훈장'입니다.


이제는 무리하게 섞이려 애쓰지 않으려 합니다.

캐나다에서의 여유와 한국에서의 치열함을 모두 아는 저는,

그 경계에서만 볼 수 있는 따뜻한 시선으로 글을 쓰겠습니다.


나의 진심을 왜곡하는 말들에는 귀를 닫고,

나의 문장 하나에 위로를 얻을 선한 독자들을 향해 내 목소리를 내겠습니다.

나는 여전히 경계 위에 서 있지만,

이제 더는 외롭지 않습니다.

나의 결실은 단단하고, 나의 세계는 나 자신으로 인해 이미 충분히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이방인 #자존감 #경계인 #위로 #에세이

이전 12화이민 1세대의 거친 손마디가 가르친 '자립'이라는 유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