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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무암 Sep 13. 2023

묻어둬도 흩어지지 않는 것이 있어

열매글방(9/11) : 슬픔

큰 상실을 겪으면서 그것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도망쳤던 적이 있다. 언제나 업무가 끊이지 않던 회사에서는 일에 파묻혀 있었고, 집에 돌아와서는 끝도 없이 예능을 봤다. 잠시 빈틈이 생기면 막을 겨를 없이 무너져 하염없이 울어도 이 슬픔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깔깔 웃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을 틀어뒀다. 그렇게 긴 시간 나에게 슬퍼할 틈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슬픔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옅어지지 않아서, 제대로 소화하지 않고 묻어둔 그것은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돌아온다. 대체 내가 지금 왜 울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답답해했지만, 아마 나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제는 더 이상 묻어둘 수 없음을. 단지 제대로 마주하기 두려웠을 뿐. 그저 내버려 두고 이 슬픔은 끝나지 않을 거라 체념했을 때, 그것은 조금씩 옅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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