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글방(10/6) : 모순
"어떻게 지냈어요?"
"잘 지냈어요."
"어떻게 잘?"
"음 그냥저냥 사람들도 만나고, .."
"잘 지내는 사람들은 '잘 지냈다'고 하지 않아요. 뭐 하고 지냈는지를 이야기하지."
심리상담을 받은 지 11개월이 되어간다. 처음 몇 달은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라는 상담의 첫 번째 질문에 말문이 막혔는데, 요즘은 "어떻게 지냈어요?"에 적당한 답을 하지 못한다. 요즘 정말 잘 지내는 것 같아서 '이제는 정말 내가 괜찮은 것 아닌가?' 생각하며 대답하지만, 잘 지냈다는 말이 잘 지내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생의 그 어느 때보다도 나만을 돌보며 살고 있지만, 행복하냐는 질문에는 눈물이 난다. 아직은 멀었다. 모든 질문의 주어가 '나'인 시기에서 벗어나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