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팀원에게 보여줄 수 있는 속내

남욕은... 하지 말자

by 오와나


꿈에 그리던 입사통지를 받은 후,

나는 스스로에게 계속 되뇌던 게 하나 있었다.

남욕을 하지 말자.

30여 년 직장생활을 하던 아빠가 신신당부하던 것이 '회사 내에서 누군가와 적이 되지 말라'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갓 입사한 신입사원이 누군가의 적이 될 게 무어가 있겠나.

나는 남 말을 함부로 하지 않고, 상사가 시키는 일만 잘해도 반이상은 갈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혼자 저 말을 계속 생각하며,

이런저런 남욕의 기회는 있었으나(?) 말을 듣고 '아 그렇군요.'는 할지언정,

말을 더 보태는 일만큼은 절대 하지 않았다.

사실 신입시절에 뭐 그리 누군가 치가 떨리게 미울 일도 많지는 않았다.

엮여있는 일이나 사람도 별로 없었으니 더 그랬을 거다.

밉고 싫은 부분은 친구들과 만나 한바탕의 수다면 털어낼 수 있는 정도였다.



슬슬 회사가 편했고, 날 보고 마냥 웃어주던 선배들이 더 이상 어렵지 않았다.

천둥벌거숭이같이 회사를 다녔다.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를 보고 다음 날 출근해서

우리 회사 아래층은 왜 중국집이냐며,

왜 정해인 같은 it업계의 미래 같은 직원은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거냐며

깨발랄하게 떠들어대며 함께 일하는 다른 직원들 앞에서 방정을 떨어대던 시절이었다.

비슷한 연차의 직원들과 점심을 먹을 때면 나도 모르게 조금씩 상사의 욕을 했고,

우리의 말은 다 맞고 상사는 왜 저래 정말? 로 대화가 끝맺음되었던 시간들이 쌓였다.



사수는 사라지고, 회사는 몇 번의 위기를 만나고,

나의 연차는 쌓이고, 후배 직원들은 많아지다 보니,

더 이상 까불던 자아는 도저히 밖으로 꺼내둘 수가 없게 되었다.


*****


언젠가 부장님이 우리와 점심을 자주 하지 않으려던 이유가 말실수를 할까봐 였다는 것에 의아해한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이 직원들과 밥을 먹으며 해서는 안될 말을 자신도 모르게 하거나,

본인에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발언이 타인에게 오해를 살까 봐

그런 상황을 애초에 만들지 않기 위해 사적인 자리를 최소화하려고 했다.

후배보단 선배가 편해진 10년 차 직원은 이제 그 말을 절실하게 체감하고 있는 중이다...


별생각 없이 점심 먹으면서 툭 내뱉었던 동그란 말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아주 날카롭고 뾰족한 세모로 내 귀에 꽂힐 때,

나는 나서서 해명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거지 같은 상황에 부들부들 떨었다.

나는 그냥 가족들과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했을 뿐인데

그게 타인을 떠보는 말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고,

나는 그냥 후배직원과 업무도중 눈이 마주쳤을 뿐인데

후배를 감시하고 있다는 오해를 받기도 하더라.

그러니 회사동료는 너무나 불편하고 나는 점점 입을 닫게 되는 모양새를 취하게 되었다.


*****


어쩌면 친구나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공유하며 대면하는 사람들이 바로 회사동료다.

특히나 한 팀으로 엮여 있으면 꼴 보기 싫어도 퇴사 전까진 무조건 부딪혀야만 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가끔은 그 옛날처럼 신나고 속 편하게 떠들고 방정을 떨어보고 싶기도 하다.

내가 무슨 부처도 예수도 아니고, 후배직원에게 뭐 얼마나 대단한 해결책을 준다고

이렇고 속에 있는 말도 참아가며 살아? 싶다가도

10년 차쯤 되면 꽤 우아하고 꽤 괜찮은 직장인이고 싶은 욕심에 다시 마음을 조용히 내려둔다.



이제 팀원에게 보여줄 수 있는 속내 같은 건 씨가 마른 듯하다.

이렇게 가는 게 맞는지 확신은 안 선다.

출근하면 많이 바쁘고, 조금 외로운 날들이다.

IMG_5894.PNG?type=w3840



keyword
목요일 연재
이전 07화있었는데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