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휴가에 들어가며 회사를 그리워하다
이제 드디어 출산휴가에 들어갔다.
10년을 안 쉬고 달려온 나에게 출산휴가는 정말 꿀 같은 휴가라고 생각했다.
한 번도 쉰 적이 없었기에 '출산휴가'의 방점은 내게 '출산'보단 '휴가'에 맞춰져 있었다.
출산휴가를 앞두고 기분이 어떠냐고 묻는 팀장님에게 10년 만에 처음으로 쉬는 거라 얼른 쉬고 싶은 마음이 크다라고 얘기했고, 출산휴가가 쉬는 건 줄 아냐, 막상 육아해 봐라 와서 일하고 싶을 거다라는 악담인 듯 농담인듯한 말이 돌아왔다.
출산휴가를 들어가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전화 참조
두 명의 신입사원을 한 번에 인수인계 하면서 내 일까지 마무리하려다 보니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신입사원뿐만 아니라 기존의 직원들에게도 일부의 일을 넘겨야 했기 때문에, 거의 팀원 모두에게 인수인계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나는 모두에게 최선을 다해서 인수인계를 해주고 싶었고 내가 없을 때 누군가 '인수인계 똑바로 안 받았니?'라는 소리를 듣게 하고 싶지 않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신입 친구들은 열정 넘치게 나를 매일 불러 폭풍질문을 쏟아냈고, 다른 팀원들 역시 책임감이 넘쳐 보였다.
집에 가면 목이 칼칼할 정도로 말을 했고 불러온 배를 부여잡고 뻗는 날의 연속이었다.
신입사원들을 뺀 다른 팀원들의 불안과 걱정은 충분히 이해가 됐다.
인수인계를 할 만큼 한다고 해도 놓치는 부분은 분명히 있을 테다.
누군가 없다고 해서 안 돌아갈 회사라는 것은 절대 없다는 것을 이미 익히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빈자리를 뼈저리게 느껴봐라'라는 마음보다는 '내가 없어도 다른 사람들이 누락 없이 잘 해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인수인계 자료를 만들고 물어보는 족족 다 가르쳤지만 막바지엔 마른걸레에 물을 짜는 듯한 느낌까지 들었다.
이 정도는 기존의 메일을 좀 봐도 될 텐데.
이 정도는 자료를 조금만 찾아봐도 될 텐데.
하는 원망도 계속 쌓였다.
날이 갈수록 불러오는 배만큼, 찾아오는 허리통증만큼, 쌓여가는 스트레스를 막지 못했다.
그들은 조급하면 조급할수록 더 나를 쥐어짰다.
32주부터는 모성보호 차원에서 4시 퇴근이 가능했지만, 4시에 퇴근한 적은 별로 없었다. 빠르면 5시였고, 심지어 4시에 인수인계 회의를 잡아두면서 하루정도는 4시에 꼭 퇴근하지 않아도 되잖아라는 식의 말을 들으며 꾹 참아내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나의 임신과 출산이 회사를 위해 하는 게 아니고 그저 내 개인적인 일일뿐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 휴직에 들어가는 나를 모두 배려해주고 있는 것이니까, 그렇게 마음을 먹으며 더 이상 물기조차 없이 바싹 말라버린 걸레는 막판까지 탈탈 털리며 최선을 다한 유종의 미를 거뒀다.
매우 흔하디 흔한 문장이지만 결국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10년 동안 우여곡절이 참 많았다'라는 사실이다.
너무나 친하게 지냈던 동기가 퇴사하기도 하고, 몇 번의 사수가 육아휴직으로 퇴사를 택했고,
함께 일하던 동료를 하늘나라로 보내기도 하고, 이런저런 서러움에 일을 하다가 눈물을 쏟기도 하고,
이곳에서 나는 코로나 시절을 버텼고, 결혼도 했고, 아가천사를 얻기도 했다.
그 우여곡절 끝에 얻은, 처음으로 맞이하게 된 긴 휴가였다.
내가 휴직을 함과 동시에 바로 회사가 어려워져서 인원조정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팀장님은 전화로 조기복귀가 가능한지를 내게 타진했고, 어쩌면 우리 팀은 와해될 수도 있고,
내가 돌아올 자리를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말까지 들었다.
이런 식의 유종의 미라니.
삶은 늘 예측하기가 어렵다.
나의 임신이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찾아온 것처럼, 회사의 어려움도 내 사정을 봐주며 오질 않는다.
인원감축과 같은 사안은 10년 동안 몇 차례 찾아왔지만 내가 바로 타깃이 된 적은 없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사실 지금 내 삶의 대부분은 태어날 아기로 가득 차 있다. 다른 것을 돌아볼 여력이 없다.
그렇지만 10년 동안 내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차지했던 회사에서의 삶을 이제 당분간 쉬어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삶을 다시 이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그동안 브런치에 차곡차곡 써왔던 글들 속의 수많은 문제들이 다 별 거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조금은 그립기도 하고, 그 생활을 다시 할 수 있을까 아득해지기도 한다.
회사 생활을 주제로 글을 20개 넘게 쌓았다.
이제 내게 회사 생활은 잠시 쉬어가는 일이 되었기 때문에 글도 쉬어가려고 한다.
좌충우돌 초보 엄마의 육아대탐험기 정도의 글로 다시 찾아올지도 모르겠다.
인수인계동안 힘들고 쌓아왔던 감정이 다 희석될 만큼 묘한 그리움이 벌써부터 생긴다.
1년이 지나 다시 회사로 복귀할 수 있기를, 그때 다시 글로 회사생활의 애로사항을 풀며 이 공간을 채울 수 있기를 슬며시 바라본다.
**그동안 '한 회사에서 9년째'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