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과장의 이야기
처음 브런치 글을 쓰겠다고 다짐한 것은, 9년 차 리더도 신입도 아닌 그 사이의 애매모호한 직원이 돼버린 탓에 내 속을 외칠 수 있는 대나무숲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mz와 꼰대 사이에서 갈팡질팡 거렸던 나는 무엇이 정답인지 알지 못했고 지금도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한 채 시간만 보냈다.
어떤 때는 꼰대의 자리에 서서 그 마음을 이해했고,
어떤 때는 mz의 자리에 서서 그 마음을 받아들였다.
어느 하나를 선택하기 어려워서 '내가 사실은 기회주의자였을까'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두어 달 동안 나는 바쁘게 인수인계를 했다.
어느덧 임신 막달을 맞이했으며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대신하여 신입사원 두 명을 뽑았고 그들을 몇 개월째 인수인계 해주며 나보다 10살이 어린 친구들을 가까이했다. 열심히 하려고 애쓰는 그 친구들이 기특하고 예뻤다.
그랬는데.
모두가 내 마음 같지 않다는 걸 깨닫는 일이 결국 또 생기고 말았다.
그 친구들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나의 삶', '나의 생각', '나의 의견'이 중요했다.
물론 나도 그렇긴 하다.
내 윗세대 분들보다 훨씬 더 '내 삶', '내 미래', '내 가족'이 중요하니까 워라밸을 외치는 것이고,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이야기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몫이라고 생각한 건 야근을 불사하고서라도 해왔고, 주말에 출근해서라도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다. 누가 가르치고 강요하지 않아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일이었다.
'그래, 일이 힘들지. 고생이 많다.'라는 팀장님, 부장님 한 마디에, 그래도 내 노고를 알아주시는구나 기뻤고,
해야 할 일을 시간 맞춰 잘 끝냈을 때 근사한 뿌듯함을 느꼈다.
이번에 만난 신입사원 친구들은 달랐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고, 야근을 하며 책임을 지는 건 같았으나, 그것을 가만히 참고 있지 않았다.
팀장님, 부장님을 흔들어 나를 봐달라고 외쳤고, 우리가 이렇게 야근을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큰 소리를 냈고, 자신의 힘듦과 어려움을 한 목소리로 말했으며,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을 말함에 스스럼이 없었다.
나는 '저 퇴사하겠습니다'라는 말이 아니고서야 부장님을 따로 불러 면담을 한다는 건 상상도 해보지 못했는데, 그들은 그런 일에 스스럼이 없었다.
그리고 사실 나는 그런 행동에 거부감을 느꼈다.
굳이 mz와 꼰대 사이에서 내가 서 있는 위치를 한 점으로 찍자면 아마도 꼰대 쪽에 더 가까워져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본인들이 일에 대해서 알면 얼마나 안다고 벌써 불필요함을 거론하는지?
야근을 하면서 일을 해야 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다고 분명 면접 때 어필했던 걸로 아는데?
어떻게 부장님한테 일이 힘들다는 말을 직접적으로 할 수가 있는지?
참 우습게도 나 역시 10년 동안 꽤 잘 길들여진 회사원이 된 모양이다.
야근이 당연시돼서는 안되고, 불합리한 부분은 목소리를 내야 하는 용기도 필요한 것인데, 그런 부분을 당차게 이야기하는 신입사원들에게 거부감을 느끼다니.
신입 시절 마음 맞는 동기와 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토로하고 의견을 나눴던 게 생각났다.
나도 이들과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도 감히 용기가 없어 말하지 못했던 소심하고 작았던 순간들.
시간만 흐르고 직급만 올라갔을 뿐 여전히 나는 소심하고 작았다.
이제는 나도 받아들여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나는 10년을 이 조직에서 너무나 길들여져 왔고,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고 느끼지도 못한 채 회사생활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신입들은 그것을 바로 보는 눈이 있고, 정확하게 말을 해줄 줄 아는 용기가 있는 친구들이라는 것을 인정해야겠다.
나는 그런 말을 마냥 불편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어떤 변화의 목소리를 내야 하는지, 무슨 말로 그들을 설득 또는 협력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할 때가 드디어 온 것이다.
역시 신입과 관리자의 역할,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뒤도 안 돌아보고 신입일 때가 좋았다.
시키는 일을 수행하고 힘든 일을 토로하면서도, 무거운 책임이나 관리를 하지는 않아도 되는 단계.
부장, 팀장이 월급을 더 많이 받는 것은 신입보다 실무는 덜 할지 언정 책임과 관리라는 매우 무겁고 어려운 일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 월급을 더~ 많이 받는 부장, 팀장의 직급은 아니지만 한 발 한 발 그곳을 향해 나아가는 중에 있는
중간자의 입장에서 새삼 세상에 공짜가 역시 없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신입 친구들과 밥을 먹자는 약속을 잡아본다.
그런 것도 이제 필요한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