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옷에 튄 빨간 국물은 사람을 좀 작아지게 만든다.
얼큰한 양념으로 얼룩덜룩해진 옷을 입고 있으면 칠칠치 못한 사람이라고 이마에 써 붙이고 있는 기분이다. 흰 옷에 묻은 얼룩은 세탁을 해도 완벽히 지워지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돌이킬 수 없이 늦기 전에 얼른 세탁기에 집어넣어야 할 것 같은 조바심이 따라붙는 것은 물론이다.
생각해보면 색이 바래거나 보풀이 생긴 옷에는 그렇게까지 신경 쓴 적이 없다. 옷을 오래 입을수록 낡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별로 놀라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 듯하다. 그러나 흰 옷에 빨간 짬뽕 국물이 튀는 사고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운이 나쁘면 옷의 수명이 순식간에 짧아지고 만다. 내가 어두운 색의 옷을 즐겨 입는 건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심신의 안정을 위함인 것이다.
나는 일상이 계획한 대로 흘러갈 때 대체로 편안함을 느낀다. 예측 불가능한 사건에 능숙하게 대처하는 요령도 여유도 부족하다. 미뤄진 약속, 비행기 연착, 가려던 식당의 비정기 휴무, 날씨 오보, 프로젝트의 긴급 수정 사항, 갑작스럽게 울리는 전화벨... 그런 일들은 마치 지우지 못한 얼룩처럼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아 신경을 거스른다. 다만 겉으로 티 내지 않으려고 엄청나게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불확실성을 싫어하는 이런 성향은 장단점이 뚜렷하다. 가능한 여러 경우의 수를 미리 상상하고 대비하는 습관은 분명 큰 장점이다. 준비성이 철저하기 때문에 '꼼꼼하다'라거나 '부지런하다' 등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계획한 일을 못 하게 되었을 때는 남들보다 더 조급해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문제는 모든 일을 계획대로 착착 진행해 나갈 정도로 능력이 출중한 것도 아니면서 그냥 혼자 북도 치고 장구도 치느라 꽤나 피곤하다는 거다. 좋게 말하면 성실하고 나쁘게 말하면 강박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나는 가끔 그 둘의 경계가 희미하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항상 완벽한 무언가를 추구해 왔다. '무언가'라고 지칭하는 것이 최선일 정도로 애매하고 손에 잡히지 않는 목표였으나 언젠가는 닿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불확실해 보이는 것들은 삶에서 열심히 몰아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전에 해보지 못한 것들을 충분히 경험하고 있다고 자부했지만, 정작 그로 인해 나의 세계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변화하는 것은 좀 꺼려했다. 그러다가 결국에 길을 잃고 내가 추구하는 목표로부터 영영 멀어질까 봐 겁이 났기 때문이다. 만약 그 모든 변화를 피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내 것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면 어땠을까? 아마 지금보다 조금 더 다채로운 사람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길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땅만 보고 걷는 사람보다는 몇 번 길을 잃더라도 결국엔 제자리로 돌아오는 사람이 더 현명한 걸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제라도 불확실한 것들을 너그럽게 대하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다. 흔히들 하는 말처럼 인생은 원래 한 치 앞을 모르는 것이고, 그래서 두렵지만 가끔은 예상치 못한 기쁨을 던져 주기도 하니까. 흰 옷에 작은 얼룩이 생기는 것처럼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신경 쓰는 빈도도 좀 줄이는 게 좋겠다. 세상에 계획대로 되는 일은 좀처럼 없으니 그 틈바구니에서 온갖 것들을 통제하고 예측하려고 씨름하다 보면 결국엔 내가 먼저 지쳐서 나가떨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