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운동도 엉덩이로 한다

by 바삭

일상에서 엉덩이라는 단어가 사용될만한 상황이 흔치는 않다. 굳이 꼽자면 공부는 엉덩이로 하는 거라는 비유적인 표현이나 짱구 엉덩이춤 정도가 생각날 뿐이다. 내게 있어 엉덩이란 의자가 너무 딱딱해서 불편할 때 고통을 조금 완화시켜주는 방석 같은 존재였지 복부처럼 꾸준히 노력하여 근육을 키워야 하는 부위는 아니었다. 바쁜 현대인에게는 엉덩이 말고도 신경 쓸 일이 많은 법이다.


그런데 운동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엉덩이의 중요도는 완만한 상승 곡선을 띠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가 엉덩이 힘을 제대로 사용하며 서 있는 방법조차 모른다는 사실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다리와 허리 모양이 틀어지고 통증이 생긴 것이 엉덩이와 배에 힘이 없어서라니! 생각해보면 나는 나무를 타거나 포식자로부터 도망갈 일이 없는 배부른 직장인이고, 지각할 위기에 처한 게 아닌 이상 좀처럼 전속력으로 달릴 일도 없으니 근육이 발달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사실 지각할 위기에 처하더라도 어김없이 택시를 호출했으므로 그때 사용되는 근육이라곤 엄지손가락 근육 정도였을 것이다. 그렇게나 많이 사용했다면 엄지손가락으로 푸시업이라도 가능했어야 하는데 딱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외에도 운동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평생 중요하게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예를 들면 미끄럼 방지 패드가 있는 발가락 양말, 신체에서 체지방이 차지하는 비율, 필라테스 선생님과 친해진 다음 자꾸 말을 걸면 운동 중 조금이라도 더 쉴 수 있다는 사실 등이다. (너무 과하게 말을 하면 “안 힘든가 보네? 2세트 더 합시다.”같은 불상사가 일어나니 적당히 해야 한다.)


운동을 배우면 배울수록 내 몸에 이렇게나 다양한 근육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한 번 놀라고 그 근육의 팔 할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두 번 놀라게 된다. 선생님이 요구하는 동작을 좀처럼 소화해내지 못할 때마다 도대체가 제대로 쓰고 있는 신체 부위가 없는 것 같고 지금 서 있는 것조차 기적인 것은 아닌지 자괴감에 빠지지만, 일단 비슷하게라도 따라 해 보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 있고 이전보다 몸을 잘 컨트롤할 수 있게 된다. 요즘은 운동 후 개운하다는 생각까지 하는 내가 참 많이 낯설다.


고백하자면 운동에 아무리 재미를 붙였어도 여전히 나는 누워 있는 게 제일 재미있는 사람이다. 전기장판 켜고 가만히 누워 있는 것보다 즐거운 일은 살면서 별로 없었다. 그러나 친절하고 똑똑한 사람이 되려면 일단 건강한 신체와 튼튼한 체력을 가져야 한다. 일상의 자잘한 게으름이 여러 해 누적되면 모르는 사이에 몸과 마음이 망가진다. 나는 친절하고 똑똑한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에 오늘도 퇴근 후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내 돈 내고 노동하며 혼나러 가는 곳’에 성실히 출석한다. 공부도 운동도 엉덩이 싸움이라고 믿는다. 몸과 마음이 모두 강한 사람이 되는 길은 이토록 멀고도 험난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50퍼센트만 마음에 들더라도